산업 기업

[여명] 운동장이 평평해야 '통신복지' 오래간다

한영일 바이오IT부장

정부 '요금인하'로 통신사 압박

통신생태계 잘 구축해야 지속

글로벌 IT공룡들, 망 '무상점유'

국내외 사업자 규제 역차별 깨야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이른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의 유래다. 잘되는 집안은 모두 비슷하게 화목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안은 애정이든 돈이든 자식 문제든 많은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요즘 통신 업계를 보면서 문득 이 법칙이 생각나는 것은 그만큼 많은 파고가 닥쳤고 또 몰려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통신복지’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5년간 무려 4조6,000억원대의 통신요금을 깎겠다고 한다. 즉 국민들이 사용하는 통신 서비스를 일종의 복지로 규정하고 그 비용을 국가 예산이 아닌 기업의 수익으로부터 충당하겠다는 그림이다. 그 첫 결과물로 선택약정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는 새로운 요금제가 오는 15일 시작돼 소비자들은 더 싸게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동통신 3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3,200억원가량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보편적 요금제와 노년층 및 저소득층을 위한 요금 인하 등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돼 최근 증시에서 통신주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통신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요금을 내릴 때 내리더라도 그 절차나 과정이 생략된 것이 많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과가 ‘선(善)’이라면 과정은 ‘불의(不義)’여도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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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통신복지의 지속성 여부다. 정부가 ‘통신 생태계’를 잘 구축함으로써 통신사들이 수익을 지속적으로 낼 때만 ‘값싼 통신’이 지속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국내에 진출한 구글과 페이스북·애플·넷플릭스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과 국내 기업들 간의 불평등이다. 국내 통신사들의 경우 글로벌 업체와 비교할 때 규제 역차별이나 제도 미비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 간의 문제처럼 글로벌 IT 공룡들과 국내 IT 사업자들 간의 역차별과 제도적 허점은 깊고 넓다. 국내 한 조사 기관의 분석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내 동영상 광고수익은 구글 유튜브가 1,168억원으로 1위, 페이스북이 1,016억원으로 2위를 차지해 두 공룡이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이처럼 글로벌 IT 공룡들이 국내 통신사들이 구축한 네트워크로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해 수익을 올리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는 치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 콘텐츠가 고화질 동영상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앞으로 가상현실(VR) 콘텐츠 등까지 대중화되면 통신망 트래픽은 엄청나게 급증할 것이라는 점이다.

네이버는 매년 수백억 원의 통신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지난해에도 법인세로 3,000억원을 넘게 냈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법인세는커녕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구축한 인터넷망 이용료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다. 물론 이들은 서버가 한국에 없다는 이유로 매출이나 수익도 공개하지 않는다. 구글이 지난해 구글플레이로 국내에서 연 1조3,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법과 제도의 허점이다.

새 정부의 첫 정기국회가 시작됐고 다음달에는 국정감사도 열린다. 국회가 통신요금 이슈 못지않게 국내에서 ‘공짜 점심’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조 3항은 ‘전기통신 요금은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가 국내 통신사에 ‘저렴’을 요구했다면 이제 글로벌 IT 대기업들에는 ‘공평’의 잣대를 들이대야 할 차례다.

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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