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차가운 사랑

정세훈 作

1315A38 시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뜨겁게 달굽니다

어미 곰이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에 왔습니다

어린 새끼 산딸기를 따 먹느라 어미를 잊었습니다

그 틈을 타 어미 곰

몰래 새끼 곁을 떠납니다

어미가 떠난 곳에


새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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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는 그 길이

새끼 앞에 먼 숲이 되어 있습니다

탯줄을 끊어 자궁 밖 세상으로 내놓던

걸음마를 배울 때 잡은 손을 놓아주던

차가운 사랑이

먼 숲을 울창하게 만듭니다

밤낮으로 먹이를 물어다주던 어미 새가 야멸차게 떠나는 걸 본 적 있다. 마른 젖가슴 파고드는 새끼 고양이에게 날카로운 이빨 드러내며 쫓아내는 어미 고양이를 본 적 있다. 아들딸 수십 명씩 까맣게 틀어박혀 있는 단칸방을 수류탄처럼 터트리는 봉숭아를 본 적 있다. 나는 자전거 짐받이를 잡아주던 형이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린 뒤 지금껏 혼자서 달리고 있다. 손잡아 준 힘으로 걸음을 배우지만, 손 놓아준 믿음으로 혼자 걷는다. 인생 팔십에 삼십 년씩 자식 손 놓지 못하는 어떤 호모 사피엔스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차가운 이야기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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