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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헤드윅’ 새로운 베를린 장벽 유연석의 외침 “부술 테면 부숴보라”

2017년 ‘헤드윅’(연출 손지은, 음악감독 이준)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배우 유연석의 합류로 더욱 신선함을 예고했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뮤지컬 ‘헤드윅’을 선택한 배우 유연석은 이번 시즌 가장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손꼽혔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헤드윅’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딛고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가수, 헤드윅의 이야기를 다룬 스타일리쉬한 록 뮤지컬. 2005년 4월 서울 초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열 번의 시즌을 거쳐 전국 공연 통산 약 2,000회에 달하는 공연을 진행하는 동안 전 회, 전 석 기립이라는 전무후무한 대한민국 뮤지컬의 신화를 써왔다.




/사진=쇼노트/사진=쇼노트


주인공은 1961년 동독, 동 베를린에서 엄마와 살고 있던 소년 한셀. 그는 냉정하고 차가운 엄마의 보살핌 대신 오븐 속에서 70년대 글램 록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달콤한 젤리와 초콜릿으로 유혹하는 미군 루터를 따라 성전환까지 감행하며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 한셀. 수술은 실패하고 루터에게도 차갑게 버림받는다. 설상가상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몸으로 미국에 도착한 그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그러나 헤드윅은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 되어 동과 서, 속박과 자유,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에 선다. 이 중심엔 뮤지컬 배우 유연석이 있다. 유연석은 이 모든 이야기를 공감도 있게 풀어낸다. 거칠면서도 깊은 상처를 간직한 섬세한 내면 연기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만큼 깊이 있었다. ‘부술 테면 부숴보라’는 외침과 함께 당당하게 선 헤드윅의 감성지도는 매 공연 700명 이상의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됐다. ‘전 석 기립’이 그저 앞 사람이 시야를 가려 일어나야만 하는 웃지 못할 기립박수와는 달랐다.

그의 첫 뮤지컬 작품은 ’벽을 뚫는 남자‘였다. 냉정하게 말해 이 작품을 보고선 이후 유연석의 뮤지컬 공연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무대를 즐기지 못한 채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됐고, 무엇보다 무대 장악력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극장이란 한 공간에 있는 배우와 관객 모두 피로감이 컸다.


그런 그가 ‘헤드윅’에서 180도 달라졌다. 단정하고 신사적인 청년의 이미지를 벗어나 화려한 가발, 짙은 화장, 강렬한 의상을 갖춘 트랜스젠더로 도전한 외형적인 변신 외에도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안정감이 묻어나왔다. 매력적인 목소리, 안정적인 연기는 수 많은 드라마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 받은 배우이지만, 생생한 무대 공연에서 합격점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과 두 번째 도전 만에 그의 시야는 넓어졌고, 목소리 주파수는 관객을 편안하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브라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나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지가 느껴지고 객석에 전달됐다. 특히 돌발적인 상황이 많은 ‘헤드윅’ 공연에서 관객들을 능수능란하게 대하는 유연석의 ‘헤드윅’은 천연덕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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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노트/사진=쇼노트




조승우가 뮤지컬 ‘헤드윅’을 역대 가장 자유로운 공연으로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면, 오만석은 역대 가장 슬픈 ‘헤드윅’을 만나게 했다. 조정석의 헤드윅은 그 누구보다 뜨거운 ‘헤드윅’의 파장을 선사했다면 2017년 새롭게 만난 유연석은 ‘헤드윅의 감성지도’ 속 숨겨진 1인치를 다시 한번 펼쳐보게 만들었다. 유연석의 얼굴을 우린 다 알지 못한다. 그의 숨겨진 얼굴은 살아있는 무대 위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그렇기에 스스로의 장벽을 시원하게 부수고 나온 그의 도전이 반갑다. 그의 세 번째 뮤지컬 작품 역시 멀지 않았으리라. 배우에게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는 말만큼 행복한 말이 또 있을까.

2005년 초연 이후, 줄곧 300~400석 정도의 극장 사이즈를 유지하며, ‘오프 브로드웨이’ 포맷을 충실히 따랐던 뮤지컬 ‘헤드윅’은 2016년 시즌부터 700석에 달하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공연의 ‘온 브로드웨이’를 구현했다. 무대 배경은 허름한 모텔이 아닌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공연장으로 변경됐고, 실제 폐차장에서 공수한 차량으로 만들어진 독창적인 스타일의 무대 구조는 살아있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헤드윅’의 특징이자 특권이라 할 수 있는 ‘배우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하게 디자인되는 연출적 노선’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만석 · 유연석 · 마이클 리 · 정문성 · 조형균 5인 5색의 ‘헤드윅’을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민, 걱정, 불행, 슬픔’ 모두를 연소시키고 싶다면 꼭 한번 만나야 할 뮤지컬이다.

한편,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인 ‘미스터 션샤인’에 합류 소식을 전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유연석이 출연하는 뮤지컬 ‘헤드윅’은 11월 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 공연된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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