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A씨는 며칠 전 받은 가정통신문을 보고 황당했다. 무상보육 지원금을 늘리기 위해 파업을 예고한 경기도 사립유치원들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는데 학부모에게 4명의 서명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A씨는 “예고 없는 파업으로 맞벌이 가정은 당장 아이 맡길 곳도 없는데 아이를 볼모로 학부모를 이용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토로했다.
보육시설에 대한 국가 지원이 늘고 있지만 정작 그 돈을 내는 학부모는 ‘을(乙)’이 되고 있다. 무상보육 정책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예산은 정부가 주기 때문에 학부모는 내 아이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형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은 70명의 아이들을 모두 저녁7시30분까지 돌본다고 공시했지만 실제로 이 시간까지 있는 아이는 10%도 채 안 된다. 그러나 이 어린이집 원장은 학부모에게 종일반으로 신고하도록 종용한다. 그래야 아동 1인당 정부지원 보육료를 6만~9만원씩 더 받을 수 있어서다. 2년째 이 어린이집 종일반에 등록한 채 세 시간만 아이를 맡긴다는 B씨는 “더 길게 맡기려고 하면 아이에게 안 좋다며 싫은 기색을 보인다”면서 “다른 곳에 보내려 해도 자리가 없거나 어린이집 원장끼리 민원이 많은 학부모를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는 아동학대 논란으로 예민해진 학부모와 절대 권한을 쥔 원장 사이에서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호소한다. 경기도 사립유치원에서 일하는 한 교사는 “개인적으로는 파업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원장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는 “호봉제 부담 때문에 연차가 높은 교사를 자르고 연차가 낮은 교사를 새로 뽑았다”면서 “교사 봉급의 80% 이상은 정부가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장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정부 지원이 늘면서 규제도 함께 커지는 바람에 정작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정부가 감독관을 파견해 불시 점검하는 평가인증 제도가 대표적이다. 감독관은 시설과 서류 점검은 물론 종일 어린이집에 있으면서 교사와 아동 간 상호작용 등을 확인한다. 어린이집은 평가인증을 받아야 교재비와 보조교사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국 어린이집의 80%가 평가인증을 받고 있으며 대부분 밤샘근무 등 사활을 걸고 대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민한 아동을 일부러 등원하지 못하게 하면서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과도한 서류 작업으로 교사들의 피로도가 커진다는 호소가 많다.
학부모의 바람과 달리 어린이집 운영은 많은 돈이 걸린 일종의 사업이다. 최근 정부가 시설이 우수한 아파트단지 내 관리동에 자리한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아파트 주민과 갈등을 빚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아파트단지 내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면 정부는 시설을 기부채납 받는 대신 지방자치단체별로 시설지원금을 최고 1억5,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어린이집 정원의 70%를 아파트단지 입주 아동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매월 어린이집 건물 임대료를 받아온 민간아파트단지의 일부 주민들은 국가가 개인 재산을 몰수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