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머니+ 돈이 되는 미술]해외로 나간 우리문화재..."무조건 공짜로 환수" 통념 버려야

■ 음정우의 미술경매

강탈 증거 없는 문화재까지

민족주의 휩싸여 진실 왜곡

냉정하고 성숙한 접근 필요

상업적인 목적 있을지언정

문화재 환수활동 앞장서 온

딜러들 사기 꺾어서는 안돼

고종황제의 하사품으로 독일인 품에 안겨 한국을 떠났던 ‘해상군선도’가 추정가 3억~5억원에 경매에 나와 6억6,000만원에 낙찰되면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사진제공=서울옥션고종황제의 하사품으로 독일인 품에 안겨 한국을 떠났던 ‘해상군선도’가 추정가 3억~5억원에 경매에 나와 6억6,000만원에 낙찰되면서 고국으로 귀환했다. /사진제공=서울옥션


지난해 12월, 타국에 잠들어 있다가 고향에 돌아온 미술품 5점이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경매에 올랐다. 낙찰 결과는 5점 총액 19억 6,000만원. 보통 한 회 고미술 경매 총액이 15~20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단 5점으로 이뤄낸 결과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면면을 보자면 조선 정조 때 단원 김홍도와 더불어 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화산관 이명기의 ‘행려풍속도’와 궁중에서 숙종 임금의 북벌의지를 담아 제작한 ‘요계관방지도’, 역시 화원의 솜씨로 삼국지의 대서사를 빚어낸 ‘삼국지연의도’, 초상화가로 유명한 석지 채용신의 ‘면암 최익현 초상’,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가 스승 옹방강의 글씨를 회상하며 적어낸 ‘행서대련’까지. 일본과 미국 두 나라에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머물렀던 미술품들을 국외에서 활동하는 딜러들이 어렵게 접촉하고 구입해온 것이었다. 당시 문화재급 미술품의 귀환에 국내 굴지의 컬렉터 및 기관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돼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경매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나라 컬렉터들의 수준과 해외 소재 문화재를 향한 관람객들의 애틋한 마음에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자의든 타의든 고국을 떠나게 된 우리 문화유산이 국외 소재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해외를 떠돌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고향을 떠나 해외에 머무는 문화재들은 언제나 특별하고 애틋하다. 워낙 침략과 침탈의 역사가 빈번했던 터라 조상의 얼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상실감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각지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의 규모는 약 16~20만 점 규모로 일본에 약 45%, 미국에 27%, 독일과 중국에 각 6% 정도의 문화재가 남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비롯해 시장에서 활동하는 딜러와 컬렉터들의 노력으로 환수는 점점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아쉬운 것은 고미술계에 몸담은 이들이 아닌 대중들이 환수문화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해외에 있던 문화재는 원래 모두 우리나라의 것인데 왜 돈을 들여서 그들로부터 구입해야 하느냐. 해외 소장자가 취득하게 된 경위야 어찌 되었든 애초에 불법적인 강탈이었을 테니 무조건적으로 기증해야 한다’는 식이다. 빼앗긴 입장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되고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재를 보유한 외국인들이 보기엔 어떨까. 오랜 세월동안 주인이 바뀌거나 대대손손 물려받게 돼 문화재가 아닌 재화적 가치로 볼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이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그리 공감되지 않을 듯싶다. 또한 상업적인 목적이 있을지언정 문화재 환수에 앞장서왔던 우리나라 딜러들의 사기도 꺾여버릴 수 있기에 걱정스러운 통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정이 격해지고 핏대 세워 조건 없는 송환을 주장할 것은 강탈의 증거가 명확하고 관리가 미흡한 틈을 타 약탈된 문화재들이지만 강탈이 아닌 자의적으로 해외에 전해지거나 강탈의 증거가 부족한 문화재들도 민족주의에 휩싸여 이성적인 관점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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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인천 제물포에 무역업을 하던 ‘칼 안드레아스 볼터’가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해상군선도’라는 병풍이 있었다. 일제에 쫓겨 바다를 건너는 볼터에게 우리 신선이 지켜줄 것이라며 고종이 건넨 이 작품은 독일로 떠난 지 100년이 지난 2014년, 볼터의 외손녀 바바라 미쉘 예거후버(94)에 의해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그녀는 경매에 유찰돼도 외국으로 다시 가져갈 수 있는 수출입 신고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려줄 심산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는 와중에도 우리 가족은 4세대에 걸쳐 이 병풍을 지켜왔고, 이 작품은 91년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면서 “작품 속 ‘신선들’이 그들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 서울의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서 지역 시민들 뿐 아니라 방문객들 앞에 위대한 작품으로 서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매는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당시 한 방송사에서 일련의 과정을 다큐로도 제작해 외국인이 사랑한 고종황제의 하사품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경매가 끝난 후 어느 날, 우연히 관련 다큐와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돈 욕심에 눈먼 노인’, ‘왜 이제야 내놓나’, ‘문화재를 훔쳐간 도둑’, ‘한 푼도 주지 말고 국고로 환수해라’ 등 그전까진 차마 예상치 못했던 대중들의 인식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보도내용 때문에 면밀히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분들이었겠지만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판적인 글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민족의 얼을 되찾고 그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좀 더 냉정하고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국외 소재 문화재에 대한 세밀한 검토와 반출성격의 분류, 그리고 작품을 향한 전략적 접근을 도모해야 해외 소장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딜러들의 상업적인 부분 또한 환수의 일환으로 인식할 때 타향살이에 찌든 문화재들을 더 빨리 귀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상대 국가를 폄훼하거나 개인을 조롱하는 행위, 더 나아가 우기기 수준의 주장은 오히려 문화재 환수의 물꼬를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더 빨리 선조들의 보물을 다시 품에 안게 될지 모른다. /서울옥션(063170) 경매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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