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중소기업 시대는 언제 오나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文정부, '중기 시대' 표방했지만

중기 중심 경제 청사진도 없어

방향 바로잡고 애로 해소해야

일자리 증가·소득주도 성장 가능

이규진 성장기업부 부장.




“웬만하면 불경기라는 말을 안 썼는데 요즘 많이 힘듭니다. (이런 상황인데) 기업을 키워주는 정책은 없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출범했는데 피부에 와 닿게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30년 가까이 소비재 중소기업을 키워온 A 대표는 요즘 불만이 많이 늘었다. 그는 “기업 하는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며 “이번 정부는 기업인들을 북돋워주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려고 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석 달 만에 만난 또 다른 B 대표는 “내 주위에서 30%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며 “좀 상황을 봐가면서 세수 확보를 했으면 좋겠다. 기업 하기 너무 힘들다고들 한다”고 호소했다.

주위에서 ‘의리남’으로 통하는 B 대표로서는 친한 기업체 대표들이 세무조사에 힘들어하는 것이 가슴 아픈 모양이다. 그는 “강력한 경쟁 업체가 나타나 매출이 반 토막 났는데 왜 매출이 줄었느냐고, 미심쩍다고 세무조사를 받고 있으니…”라며 혀를 찼다.

30년 넘게 위생용품 부품으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백전노장 C 대표도 할 말이 많다. 원천기술과 탄탄한 영업 기반을 갖고 있어 실적이 좋은 C 대표지만 문재인 정부의 기업 관련 정책은 영 못마땅하다. 그는 “최저임금을 인상해도 우리는 괜찮다. 일용직 일부만 빼고 다 최저임금 이상 받고 있으니까”라면서도 “그런데 계속 최저임금을 올리면 우리도 인건비 부담이 힘들어진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26일로 ‘중소기업 시대’를 표방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40일, 달수로는 세 달하고도 보름이 넘었다. 원래 기대대로라면 지금쯤 중소 업계는 장관 부처인 중기부의 활약을 지켜보며 문재인 정부의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중소기업인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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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기부 출범에 환호한 중소기업인들로서는 중기부 장관의 임명과 낙마 과정이 어이가 없다.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의 자질 논란 얘기가 아니다. 중소기업 시대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캠프가 어쩌면 이렇게 준비가 안 됐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반드시 기업인을 중기부 장관에 앉혀야겠다고 30명 가까이 의사를 물어봤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장관 임명이 지연된 변명일 수 있겠는데 그 얘기를 듣는 기업인들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얼마나 할지 모르는 장관직을 위해 평생 일군 자신의 회사 지분을 강제로 팔아야 하는 ‘백지신탁’ 제도가 버젓이 있는데 어떤 기업 오너가 선뜻 장관직을 수락할 수 있을까. 특히 이미 지난 정부 때 ‘황철주 사태’를 목격하고도 시종일관 기업인만 찾아다녔다니 그 무지에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장관 임명이 안 된 탓도 있겠지만 중소기업 중심 경제의 청사진을 새 정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차라리 배신에 가깝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금융위기 이후 대량생산 체제의 대기업 중심 경제가 고용과 성장을 견인하지 못한 것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 이런 경험은 한국 경제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뚜렷이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캠프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공약했을 것이다. 세 달이 지난 지금 그 공약은 포장만 요란했을 뿐 알맹이가 없었던 ‘레토릭’으로 결론이 나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인들은 새 정부의 여러 정책이 불안하기만 하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내수를 키우려는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이 큰 틀에서는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 속도와 정책의 우선순위에는 상당수의 중소기업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제라도 “주변 여건이 죄다 나쁜데 타이밍도 안 맞는다. 주변의 사장들 사이에서 ‘이 정도면 반(反)중소기업 아니냐’라는 소리까지 나온다”는 지방 소재 중소기업 대표의 목소리를 곱씹어봤으면 좋겠다.

중소기업 시대를 만들려면 물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동시에 기업인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규제 등 애로를 해소해줘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주도 성장도 가능하다.

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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