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슈 앤 워치]과거 집착하는 정부...10년 앞 성장전략이 안보인다

기업들이 힘들어 하는 진짜 이유

26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위원회 현판식. 나라의 미래 먹거리가 걸려 있는 이날 행사에는 대통령도 총리도 없었다.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오전 10시에 열렸던 점을 감안할 때 대통령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참석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혁신 성장은 새 정부의 성장 전략에서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면서 정책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 도처에 분배론자들이 포진해 있어 과감한 정책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여가 훌쩍 흘렀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의 힘’으로 탄생했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만들어준 지지층을 향해 끊임없이 구애를 하고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현 정권의 무게는 ‘과거’로 쏠려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갈무리되기도 전에 현 정권의 칼날은 이명박(MB) 전 대통령 시절의 ‘적폐’로 향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규명과 부패를 향한 전방위 사정도 휘몰아치고 있다. 지지층은 환호하지만 한편에서는 불안함이 가득하다. 특히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기업인들은 부패의 한 축으로 규정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는 언제 닥칠지 모를 검찰의 발길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기록’을 지우기 바쁠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장관은 “정권의 힘이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 미래를 향해야 한다”며 “당장이라도 10년 앞으로 바라보는 성장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만 향하는 정부

정부의 ‘적폐 수술’은 과거의 왜곡된 사회문화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이다. 최순실 사태에서 보여준 기업과 정권의 결탁, 일그러진 행위는 수사를 통해 도려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사정의 칼날은 전선을 너무 넓혔다. MB정부의 4대강 사업과 해외자원 개발 수사 등 겉으로 드러난 것은 물론 군과 검찰, 금융당국과 과세당국 등 모든 부분에서 과거의 행적을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 원로는 “지금은 과거가 미래를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개혁, 원전 문제 등 모든 부분이 좌우 이념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소외된 계층을 달래고 양극화를 바로잡는 데서 벗어나 양 극단에 선 국민의 편 가르기도 이어지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한 장관은 “참여정부가 잘못한 가장 큰 문제가 갈등이었는데 그런 모습이 재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갈수록 불안한 사회


이념 과잉, 이분화된 사회가 돼가면서 검찰과 경찰·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사정 칼날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와 한화·대한항공 등이 수사와 조사를 받고 있다. 총수가 구속돼 있는 삼성은 공격적 투자와 경영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공정거래 이슈가 부각되면서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3사와 대림·하림 등도 공정위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기업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는 이유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중국 시장에서 직격탄을 맞은 현대자동차가 공정위로부터 지배구조 개선 압박을 받는 모습에 다른 정부 부처도 안타까움을 표시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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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비해 기울어진 운동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행 35%인 법인세를 15%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인세율을 높이고 대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세액공제는 축소한다. 프랜차이즈를 규제하다 보니 콘트란쉐리에 같은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리는 일도 일어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경쟁해야 할 카카오나 네이버에는 ‘뉴노멀법’이라는 족쇄를 채워 점유율을 떨어뜨리려 하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정보공유를 막는 ‘차이니즈월’에 상대적으로 국내 금융사만 손해를 보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와 정책에 큰 관심이 없는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들이 정부를 향한 날 선 발언을 꺼내겠는가. 이재웅 다음 창업자에 이어 최근에는 임지훈 카카오 대표까지 “국내외 기업이 모두 똑같은 운동장, 조건에서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당국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미래 먹거리 없는 정책

주요 정책이 ‘과거’를 향하면서 정작 10년 앞을 보는 산업정책은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력산업이 이미 중국에 따라잡혔고 반도체마저 2년가량 후면 우리가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불안감이 기업인 사이에 팽배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대 지침 폐기 등 거꾸로 된 노동개혁에만 집중하고 있다. 기업의 미래를 한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데 성장정책은커녕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인상 등 생존 싸움에 급급하고 있다. 과거 정권부터 이어져 온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 관련법 처리마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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