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120명 규모의 수사인력으로 구성된 공수처 설립 권고안을 발표했다. 공수처장이 이끄는 검사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바탕으로 2급 이상 고위공무원과 그 가족의 권력형 비리를 전담 수사한다는 게 골자다. 검경과 수사 대상, 범위가 중복될 경우 검경이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하는 ‘우선 수사권’을 갖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번 권고안과 국회 계류 법안을 바탕으로 입법부와의 공식 논의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공수처 신설 법안이 지난 20년 동안 13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수사의 중립성 논란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수처 찬성 측은 고위공직자 부패를 근절하고 검찰과 정권의 유착관계를 끊기 위해서도 공수처 신설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공수처 설치로 검찰의 정치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공수처와 검찰이 서로 경쟁, 책임 전가할 경우 국가의 형사사법체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적폐 청산은 이 시대 제1의 과제다. 지난겨울 촛불시민들의 한목소리의 외침이 그러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새 시대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는 적폐를 청산하는 최전선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적폐들은 대부분 합법으로 치장된 교묘한 위피를 입고 횡행했다. 그것은 권력이 주는 달콤한 사탕이었고 그 권력에 편승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검찰 등의 사법권력은 수시로 이 적폐들을 법의 이름으로 얼버무려왔다. 제왕적 대통령과 검찰공화국, 그리고 무능함으로 일관한 국회의 직무유기 등이 최악의 모습으로 결합한 것이 바로 적폐들의 행진이었고 그 결과가 국정농단이었다.
벌써 20여년간 지속된 공수처 논의는 이런 적폐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적폐와 거악을 척결해야 할 기관은 의당 검찰이다. 하지만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따라서 그 정권의 의지로부터 자유롭기를 거부한 검찰은 이런 임무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지만 스스로 직무를 방기해버린 검찰은 되레 무소불위의 권력이 돼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에 한몫을 더 하고 나섰을 뿐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이미 신뢰를 상실해버린 검찰을 대신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권력에 맞서며 권력의 비리와 불법을 파헤치는 새로운 기구의 설립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검찰 개혁의 한 방안인 양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수처의 실체는 그동안 아무도 혹은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권력형 비리와 부정을 수사하고 처단하는 것에 있다. 민주화를 거스르는 권력의 오·남용을 즉시 교정하고 산업화의 부산물인 정경유착의 비리나 ‘갑질’의 패악들을 과감히 척결해냄으로써 법으로 권력을 통제하고 정의로 사회를 바로잡아나가는 것이 핵심 임무인 것이다. 물론 수사 대상에는 검찰도 포함될 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나눠 갖게 되는 만큼 검찰 개혁과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공수처 설치를 계기로 검찰이 스스로를 부끄러이 여기면서 자기 개혁의 기치를 높여나가면 일석이조의 기쁨을 우리 국민에게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의 핵심은 권력형 적폐의 청산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얼마 전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제시한 공수처 설치안은 이런 논의를 다시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 안을 두고 공룡조직이니 혹은 옥상옥의 기구니 하며 비판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기에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름 일리 있는 반론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개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드는 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적폐 청산을 위한 기구로 공수처라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점일 뿐 나머지 논란들은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합리적인 심의와 토론으로 정비해나가면 되는 아주 사소한 각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은 적지 않다. 국회에 발의된 안뿐 아니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제시한 안도 있다. 이들은 공수처의 권한 문제보다도 어떻게 하면 공수처가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적폐 청산 기구로 작동할 것인가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공수처를 소속 없는 국가기관으로 만들자는 안, 공수처 조직을 국회가 주도하게 하자는 안, 검찰공화국의 주역이었던 검사들은 공수처에 발도 못 붙이게 하자는 안 등등 누가 봐도 객관성이 담보되는 방안들이 적지 않게 제시되고 있다. 입법자의 지혜로, 그리고 시민들의 집단적 지성으로 얼마든지 공수처의 역할과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공수처의 중립성은 무엇보다 강고하게 보장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야당을 중심으로 공수처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장악될 수 있기 때문에 공수처 설치를 반대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인 공수처를 만들 것인가에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적폐 청산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대의 과제다. 공수처는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방안이다. 야당이든 검찰이든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는 않더라도 이 절박한 시대의 요청만큼은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