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대형 유통시설 규제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나라였다. 영세 사업자 보호를 위해 매장 면적 1,500㎡ 초과 시설을 신설·확장할 때마다 지역 도시계획위원회의 승인을 반드시 거치게 하는 ‘르와이에’ 법을 지난 1973년 도입했기 때문이다. 1996년에는 승인 대상을 300㎡로 확대하는 ‘라파랭’ 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4~1998년 24년간 평균 승인율이 40% 수준에 그치면서 유통산업 고용률 저하 효과만 가져왔다. 유통규제 강화가 경제성장에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확인한 프랑스는 결국 규제 대상을 1,000㎡ 이상으로 줄이는 ‘경제현대화법’을 2009년부터 시행하면서 규제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당정이 추진 중인 유통규제 명분 가운데 하나는 ‘다른 선진국들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다르다. 대다수 나라가 도시계획 차원에서 접근했지 우리처럼 골목상권 보호를 내걸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캐나다 등 상당수 나라가 규제를 거의 두지 않고 있고, 영국·프랑스·일본 등 기존 규제 도입 국가들도 고용 저하·소비자 후생 감소 등 경제 부작용 때문에 이를 완화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유통규제는 더더욱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쇼핑몰이라고 무조건 규제 안 해 = 현재 일부 국가에서 실시하는 유통시설 영업시간 규제는 우리 당정이 추진하는 것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이들의 규제는 대규모 소매점포만 한정해 휴업시키는 게 아니다. 도시계획차원에서 시설 유형을 분류해 제한하는 게 골자다. 우리처럼 대기업에서 운영하거나 업태가 복합쇼핑몰이라고 해서 무조건 규제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의미다.
세부적으로 미국의 경우 슈퍼마켓 일요일 규제를 실시하는 주는 7개에 불과하다. 영국의 일요일 영업 제한 역시 기독교적 관점에서 종교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됐다. 프랑스는 노동자들의 휴식을 위해 일요일 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은 거주민 생활을 위해 소음방지법으로 영업시간 규제를 ‘가능케’ 했을 뿐이다.
출점 제한의 경우도 우리와 다르다. 해외 국가들의 규제는 도심 상권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지 특정 경제주체를 죽이거나 살리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 특히 온라인 유통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는 선진국들이 과거에 도입한 규제의 겉모습에만 목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 측면에서만 보면 언뜻 많은 국가에서 출점·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선진국들은 대규모 소매점포에만 한정해 규제하지 않는다”며 “선진국 제도는 도시계획차원에서 토지 용도에 따라 해당 시설이 주변 환경과 주민 등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프·일 등은 규제 완화 속도=나아가 영국·프랑스·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들은 있던 규제도 소비 진작을 위해 완화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대규모 점포가 입점할 때 필요한 향후 5년간의 수요예측 조사 과정을 2009년 폐지했다. 프랑스 역시 대규모 유통시설 규제를 담은 라파랭 법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규제를 완화는 쪽으로 돌아섰다. 한 때 프랑스는 유통시설 규제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나라였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가 일자리 감소로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1974년 중소소매업체의 보호 용도로 ‘대규모소매점포법’을 도입했던 일본은 2000년 이를 폐지하고 간접 규제인 ‘대점입지법’을 도입했다. 대점입지법은 교통 등 주민의 편리성를 제고하고, 주변 생활환경 보호하기 위한 사항만 규정한 법이다. 또 교외 개발로 인해 도심이 침체될 것을 우려해 ‘중심시가지활성화법’까지 별도로 개정했다.
주하연 서강대 교수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유통시설의 진입·영업시간 규제가 완화 또는 폐지되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매출과 고용이 증대되며 소비자 후생도 증진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