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의 어머니이자 현명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미리암’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배우 서지영은 “벤허는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뮤지컬이다”고 말했다.
“‘벤허’는 나이드신 분들에겐 향수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자, 젊은 분들에겐 또 다른 뮤지컬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작품 아닐까요.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보시고 각자만의 감동을 가지고 가셨으면 해요.”
국내 뮤지컬 사상 초유의 흥행을 기록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다시 한번 왕용범 연출의 창작 뮤지컬‘벤허’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서지영은 “창작이 주는 힘을 무시 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소재가 특별해서 젊은 층이 더 열광했던 것 같아요. 반면 ‘벤허’는 감동적인 면이 많아 나이 있으신 분들이 좋아할 매력들도 가득해요. 두 작품 다 사랑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온 것에 대한 만족도는 있어요. 두 작품 모두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죠. 커튼콜 할 때 독립 운동을 마치고 온 투사의 기분이랄까. 굉장히 벅찬 느낌이 있었어요. 소재는 외국에서 가져왔지만, 어쨌든 우리 힘으로 만든 창작이 주는 힘이 큰 것 같아요.”
벤허의 어머니 ‘미리암’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총독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반역죄로 몰려 로마군에게 끌려간다. 결국 감옥에서 문둥병을 앓다 문둥병 마을 골짜기까지 쫓겨가게 된다. 딸 그리고 아들 때문에 더욱 강인해지는 엄마 ‘미리암’은 서지영의 깊은 연기로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캐릭터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문둥병이 어떤 건지 자세히 몰라서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요. 제가 알아봤을 때 문둥병이란 게 살이 썩어들어가는 병이라고 했어요.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데도 아픔을 모를 정도로 신경이 다 썩어들어가는거죠.
외면적으로 표현하는 것 보다, 죽을 병에 걸린 미리암의 대사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마지막일 것 같아서...’라는 대사가 있는데, 죽는 병을 알고 있는데 딸 때문에 견디는 거거든요. 딸이 없었다면 감옥에서 혼자 죽었을 수도 있겠죠. 버틸 수 있는 힘이 약해지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극 중 절망 속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꿈꾸는 ‘미리암’의 굳은 의지를 오롯이 담은 독창 넘버인 ‘기도’는 간절함이 뜨겁게 전해지는 곡. 소리내서 통곡하는 울음이 아니라 속으로 삭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벤허’가 전하는 감동에 힘을 싣는다.
“세월이 흘러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봤을 때, 감정이 오죽하겠어요. 벌써 아들 옆에 가 있는데, 손도 못 내미는 심정. 손 하나만 내밀면 잡히는데 거리에서 엄마의 마음을 어땠을까요? 절제하고 또 절제해야 돼요. 그 마음을 ‘기도’라는 넘버에 담았어요. 솔로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하녀 에스더한테도 그렇고, 딸 티르자 한테도 같아요. 나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거죠. 그들이 떠났을 땐 다시 연약한 여자로 돌아와 제발 날 잡아주세요란 간절한 마음을 노래해요. 통곡을 하거나 하면 괜찮은데, 그 감정을 끝나고 나서도 가지고 있어야 해서 힘들어요.”
이번 작품에서 서지영은 동갑 배우 유준상의 어머니로 나온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선 “내가 유준상 엄마 하려고 이 작품을 했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너스레를 떤 서 배우는 “준상씨가 나중에 내가 아빠 역 해줄게”란 말을 듣고 부담을 덜었다고 했다. 이번엔 3인 3색 벤허를 만날 수 있다. 서 배우는 “박은태 벤허는 세심한 아들이고, 유준상 벤허는 깊이있는 아들, 카이 벤허는 정직한 아들이다”고 평했다.
“1막에서 식탁에서 엄마와 아들이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때 확실히 달라요. 은태 벤허는 되게 적극적으로 반응해요. 카이 벤허는 사춘기 아들 같다고 할까요.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아들이요. 준상 벤허는 미안해서 그런지 눈을 못 마주쳐요. 동갑인 내가 엄마라는 게 미안한가 봐요. 호호. 워낙 동안이고 목소리 자체도 젊어서, ‘어 어떡하지’ 그런 거부감은 없어요. 철든 아들은 은태죠. 감정선이 너무 세심해요. 잔가지가 많이 쳐진 것 같은 섬세한 아들이죠. 준상씨는 쿨하면서 깊이가 있어. 카이는 연기가 굉장히 정직해요. 깨끗한 음색과 잘 맞는 것 같아요.”
“진정한 용서의 의미를 알게 되고, 제 인생을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서지영 배우가 ‘벤허’ 작품을 하며 느낀 감정이다.
“공연이란 게 보시는 분마다 달라요. 관객들이 개인적인 흡수를 하시잖아요. 제 경우를 대입해서 말하자면, 메시아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요. 그런 상황인데도 ‘용서하라’는 말을 하시잖아요. 저분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일텐데...나에게도 대입 될 수 있을까. 살다보면 원수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을 잊고 살 수는 있는데 과연 용서 할 수 있을까? 그게 너무 크고 어렵잖아요. 그 장면에서 계속 눈물이 나요.”
서지영 배우는 “용서의 경지에는 못 갔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악의적 감정을 갖고 거짓 소문을 내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복수해야지’란 생각도 들었고, 가슴이나 머리에서 지우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이를 갈고 칼을 갈면서 ‘꼭 복수해야지’란 생각을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점은 복수보다 내가 행복하고 잘 살면 이들에게 복수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점이요. 굳이 그 사람들에게 똑같은 피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 눈에 내가 ‘잘 살고 있네’로 비춰지면 복수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더 행복하게 살려고 했어요.”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의롭게 살면 돼요. 악으로 가려진 정의가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인거죠. 다른 이에게 나쁜 피해를 준 사람은 벌을 받아요. 삶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바뀐 것 같아요. ‘벤허’가 더 그런 생각을 갖게 해주고 있죠”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