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인터뷰]200만 돌파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위로하고 지지하고 싶어요"

'드라마적 이야기 방식' 우려됐지만

'재미+의미' 절묘한 균형으로 감동

'박열' 이어 또 일제강점기 소재 작품 출연

일본 저격수?...역사적 팩트 알릴 뿐



영화 ‘건축학개론’(2012)의 승민 역을 맡아 ‘국민 첫사랑’으로 여성팬들을 사로 잡았던 배우 이제훈. 그는 달콤하고 아련한 첫 사랑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화 ‘파수꾼’, ‘고지전’, ‘분노의 윤리학’, ‘파파로티’ 등을 비롯해 ‘시그널’, ‘비밀의 문’ 등 드라마를 통해 연기의 스펙트럼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지난 6월 말 개봉해 235만 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박열’의 아나키스트에 이어 지난 21일부터 ‘아이 캔 스피크’로 또 다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전작에서는 열정적이고 장난기 많은 아나키스트 박열을 연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침착하고 원리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성실한 9급 공무원 박민재 역을 맡았다. 영화는 민원건수만 무려 8,000건으로 구청의 블랙리스 1호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나문희 분)과 구청의 9급 공무원 민재가 영어를 통해 엮이면서 벌어지는 소동이 전반부에 코믹하게 펼쳐지다가 옥분의 영어를 배우려는 가슴 아픈 이유가 뭉클하게 그려지는데, 관객을 웃기다 눈물을 쏙 빼놓으며 묵직하고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김현석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최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무런 정보 없이 받은 시나리오였는데, 훈훈하고 유쾌하게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에 재미를 느끼다가 나중에 드러난 위안부 피해자였던 옥분의 사연에 많이 놀랐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이 너무나 힘들게 다가왔고, 민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이제 서른 다섯 분 정도 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로 대표되는 옥분을 위로하고 지지하고 지켜주고 싶어서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존 한국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같이 정공법이 주였는데, 할머니들의 아픔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며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한 이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혹시 대중에게는 낯설지 않을까, 오히려 할머니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다”며 “그러나 김현석 감독님을 비롯해 제작진의 진정성과 아픈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이를 촬영 내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의 소재로 삼기에는 너무나 아픈 그래서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될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본군 위안분 문제를 재미와 의미의 절묘한 균형을 만들어 내며 감동을 이끌어 냈다.



옥분은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는데 동네에서는 오지랖 넓고 드센 할머니로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옥분의 이 같은 오지랖은 간섭이 아닌 애정 어린 걱정이다. 위안부였다는 이유로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이 사실을 꽁꽁 숨기던 옥분에게 동네 사람들이 가족이었던 것. 이 때문에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은 우리에게 울타리가 돼 주고 우리게 버티는 힘을 주는 존재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미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요. 영화에서는 서로의 상처를 보고 어루만지면서 민재가 옥분 할머니의, 옥분 할머니가 민재의 가족이 되는데 이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자 힘이라고 생각해요.”



‘아이 캔 스피크’의 또 다른 주인공인 배우 나문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연기는 이미 평가의 대상을 넘어선 경지에 이르렀지만, 극성맞은 ‘민원왕’ 옥분 할머니 캐릭터는 애초에 그를 염두에 뒀나 싶을 정도로 그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역할이다. 공무원들에게 ‘빽’하고 소지를 지를 때,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눈물을 글썽일 때, 민재 형제에게 따뜻한 ‘할머니 밥상’을 한 상 차려주고 그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 위안부 피해자로 미국 의회에 나서서 증언하는 장면, 증언이 끝나자 옥분에게 망언을 해대는 일본인들에게 시원하게 일본어로 욕을 날리는 장면 등 수 많은 애처롭고, 뭉클하고, 따뜻하고, 후련한 장면은 온전히 그에 의해 완성됐다. 이제훈은 나문희와의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모든 테이크가 연기가 아닌 그의 인생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막연하게 나문희 선생님이 하시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제작진에게 무조건 나문희 선생님이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나문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이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촬영 때뿐만 아니라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보니 감동이 더욱 크다”고 덧붙였다.


‘박열’에 이어 ‘아이 캔 스피크’까지 일제 시대를 소재로 한 작품에 잇달아 출연한 그인 까닭에 ‘일본 저격수’로도 불린다. 이에 대해 그는 “‘박열’도 ‘아이 캔 스피크’도 모두 역사적 팩트다”며 “배우로서 영화로서 팩트를 알리는 것도 사명이고, 이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도 위안부 혹은 일제 강점기 시대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 하는 것도 있고, 일본인은 더욱이 잘 알지 못하거나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기도 하다”며 “이런 작품을 통해서 생각의 전환과 변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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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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