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일본 닛산자동차의 무자격 안전검사 및 서류조작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3대 철강사인 고베제강도 제품 강도 관련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일본 제조업의 ‘품질관리’ 신화를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모노즈쿠리(장인정신)’를 바탕으로 최고 품질을 표방해온 일본 제조업체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대형 철강업체인 고베제강이 자동차와 항공기 등에 사용되는 알루미늄과 구리 제품 일부의 강도 등을 나타내는 자료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신뢰 추락에 따른 고객 이탈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고베제강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1년간 출하한 알루미늄과 구리 제품 가운데 4%가 사전에 고객사와 약속한 강도 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약 200개사에 납품됐다”며 회사 측이 데이터 조작을 위해 “검사증명서의 데이터를 수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고베제강이 지난 8월 말까지 납품한 물량은 1년간 2만톤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제품에 따라 최소 10년 전부터 데이터 조작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조사 대상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번에 밝혀진 데이터 조작은 자회사를 비롯한 일본 내 총 4개 공장에서 수십 명이 조직적으로 연루된 사건으로 이들은 납기와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기준미달 제품을 출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베제강은 구체적인 납품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의 자회사가 개발 중인 첫 일본산 제트여객기 ‘MRJ’, 도요타자동차의 보닛, JR도카이의 신칸센 등 안전기준을 필수적으로 준수해야 할 곳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베제강의 데이터 조작 스캔들로 ‘메이드 인 재팬’ 제품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며 “자동차 주행성능이 관련된 주요 부품에 강도 부족 제품이 사용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대대적인 리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있으며 제조업 공급망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고베제강의 데이터 조작은 닛산자동차가 일부 차량에 대해 무자격 안전검사를 한 것으로 밝혀진 지 열흘 만에 또다시 불거진 것으로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닛산차는 일본 내 6개 생산공장에서 무자격 직원들이 핸들 작동이나 점등 상황 등 안전기준을 점검해온 것이 드러나면서 지난달 29일부터 경차를 제외한 21종, 총 6만대의 자동차 판매를 중단했다. 요미우리는 “닛산차는 이미 시장에 팔린 차량도 재점검하기로 했다”며 “대상 차량이 최소 9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제품 성능에 관한 데이터 조작이나 부실검사로 인한 파문에 휩싸인 일본 제조업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세계 2위 자동차에어백 제조업체였던 다카타는 2004년 제품 결함을 파악했음에도 이를 은폐했다가 잇단 인명사고를 일으켜 6월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지난해 4월에는 미쓰비시자동차가 경차 모델인 ‘eK웨건’ ‘eK스페이스’와 닛산에서 위탁받아 생산한 경차 ‘데이즈’ ‘데이즈룩스’ 4개 차종 등 총 62만5,000대의 연비를 조작한 사실을 시인해 이후 경영난에 빠져 닛산에 인수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