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보유외환 충분하다지만 "4,000억弗 넘어야"...힘실리는 '다다익선論'

외환보유액 적정선 논란

"급격한 자본유출은 기우...건전성에도 문제 없어" 주장에

"위기시 긴급 충당하기엔 부족...1,000억弗 이상 늘려야"

정부도 계속되는 경고에 통화스와프 확대 등 대안 모색

1115A03 한국의 대외채무와 단기외채 비중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는 외부의 변수에 취약하다.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해도 내수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일본·미국 등처럼 악재를 버텨낼 힘이 부족하다. 북핵 이슈부터 미국의 통상 압박,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거론될 정도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주 만에 이례적으로 글로벌 신평사를 방문하는 것도 그만큼 현 상황이 위중하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자 3,8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의 적정선을 놓고 “더 늘려야 한다”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더 많은 외환방파제가 필요하다는 쪽은 “작은 신호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더 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지금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20년 전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고, 특히 대외환경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썰물처럼 위기가 몰려오면 한해 수입액의 25%와 유동외채 전액, 외국인 주식투자금 33%를 합한 4,670억달러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외환자금까지 포함해 현재보다 1,300억달러 이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당시 경제관료들도 현재 상황은 20년 전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한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외교안보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 자칫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면 외환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며 “최고 수준의 경각심을 가지면서도 3,8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자신하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외환 당국은 외환보유액 적정성 문제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급격한 자본유출 현상은 기우에 불과하고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는 게 그 근거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848억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인도에 이어 세계 9위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기준치의 13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자신감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도 있다. 지난해 기준 경상수지 흑자는 986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5년(1,059억4000만달러)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다. 이 때문에 정부는 우리 경제의 외환건전성이 우려스러운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올해 2·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30.8% 수준. 우리가 가진 외환보유액으로 단기외채를 모두 갚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IMF는 물론 국제신용평가사들도 외환보유액이 적절하다고 평가하는 만큼 지금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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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국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장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해 900억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민간의 외환자산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에서 건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한은은 현재 외환보유액 전체가 가용보유외환액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정부의 입장과 달리 외환보유액 적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외부충격 대비 환율방어 수단으로 ‘다다익선론’에 대한 목소리는 높다. 당장 외환보유액을 4,000억달러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적정 외환보유액 권고기준을 ‘3개월치 경상수입액+유동외채+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3분의1’로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 단기 대외채무는 2·4분기 기준 1,060억달러, 최근 3개월 수입액은 1,020억달러다. 여기에 지난달 말 기준 외국인 주식보유액을 미화로 환산하면 4,700억달러가량으로 이의 3분의1은 1,560억달러다. 이를 모두 더하면 3,640억달러로 현재 외환보유액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현재의 보유외환은 위기 시 필요한 외환을 긴급 충당하기에는 대체로 1,000억달러 이상 부족한 편”이라며 “한중 통화스와프는 반드시 잡아야 하고 한미·한일 통화스와프 등 3·4단계에 걸쳐 외화 유동성 확보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계속되는 경고에 정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 경제부총리는 12~14일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회의에 참석해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한은도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에 올인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협의와 관련해 “아직 모든 것이 완결되지 않았고 오늘도 회의가 잡혀 있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협상 상대가 있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타결되고 발표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전했다. 정부는 특히 외환보유액 늘리기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금처럼 쓸 수 있는 통화스와프 확대도 고려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중단된 한미·한일 스와프처럼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강화하는 등 다른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호·서민준·빈난새기자 hhlee@sedaily.com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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