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이었다. 갑자기 살이 빠지더니 보라색 소변이 나왔다. 소아당뇨 진단을 받은 나만 보면 엄마는 우셨다.”
“‘엄마, 3월20일이 어떤 날인지 알아? 내가 인슐린 주사를 맞기 시작한 날이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덟 살 딸은 놀랍게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 지난봄에 주최한 ‘당뇨병 극복을 위한 인슐린 치료 공모전’ 수상작들의 첫 문장이다.
제1형 당뇨병은 흔히 소아·청소년 시기에 찾아와 ‘소아당뇨’ ‘소아청소년당뇨병’으로 부른다. 젊은 성인기나 노년기에 시작되기도 한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만드는 췌장 베타세포가 여러 이유로 파괴돼 인슐린 분비가 심각하게 떨어지며 생긴다.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으면 혈당을 잘 조절할 수 없고 생명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심한 고혈당과 함께 케톤산혈증으로 응급실에 실려와 진단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당뇨병 환자는 48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1형 환자는 3만~4만명(18세 미만 약 5,000명)으로 전체의 1%도 안 된다.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형 당뇨병은 흔히 40~60대에 진단되고 먹는 당뇨약으로 치료한다.
1형 당뇨병은 매일 서너 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중학생만 돼도 스스로 인슐린 주사나 혈당 측정을 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생, 영유아는 부모의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사 때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 인슐린 주사를 놓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사 없이 식사하면 심각한 고혈당에 빠져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당뇨 아이들을 유치원·학교에서 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보건교사나 간호사가 1형 당뇨병 아동을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야 부모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인슐린 주사를 놓거나 혈당을 수시로 재고 저혈당 증세가 있으면 사탕·음료 섭취로 혈당을 올려줘야 한다. 드물지만 심한 저혈당으로 응급상황이 되면 글루카곤 주사도 놓아줘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돌봐줄 담당교사가 정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나 학생들이 1형 당뇨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무심히 던진 말이 1형 당뇨병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아이가 학급에서 놀림감·왕따가 되기도 한다. 이게 싫어 화장실에서 몰래 인슐린 주사를 맞기도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뇌전증(간질)을 앓는 반 친구가 발작을 일으킬 때 친구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1형 당뇨병과 관련해서도 보건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의학·공학 발달로 인슐린 주입, 혈당 측정에 첨단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나 인슐린 펌프 등이 그 예다. 인슐린 펌프를 이용하면 하루에 서너 번 엄마·본인 등이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초기 구입비를 빼고도 월 10만~20만원의 소모품 비용이 들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소아당뇨 어린이가 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엄마에게 “난 그거 안 좋아해”라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의사로서 죄책감을 느낀다.
정부는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여야 희귀질환(건강보험 본인부담률 10%)으로 지정하는 규정을 고쳐서라도 1형 당뇨병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국가가 할 일이다. 1형 당뇨병이 있다는 이유로 취직을 못 하는 경우도 있는데 차별금지법도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