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산업계 "특근 못해 생산·납품 차질...영세업체 10% 문 닫을판"

추가수당 못받아 임금 되레 줄고 중기는 구인난 우려

"현장 모르는 처사...하청업체 법 어기고 공장 돌릴 것"

1715A03 ‘근로시간 단축




#완성차 회사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 L사는 주야2교대로 공장을 운영한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평일 5일간 하루 8시간의 정규노동에 잔업 2시간을 더해 10시간을 일한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는 공장에 나와 8시간 특근을 한다. 이렇게 되면 일주일 근무시간은 58시간. 만약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면 특근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사측은 계획된 생산물량을 맞추려면 특근을 꼭 해야 하고 근로자들 역시 빡빡한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주말 이틀을 다 쉬는 것보다는 특근을 선호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영세업체 대부분의 사정이 비슷해 근로시간 단축이 갑자기 강제화되면 생산과 납품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면서 “영세한 업체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게 돼 결국 하위 10%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행정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행정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으로 본 행정해석을 폐기해서라도 근로시간 단축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산업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만약 유예기간 없이 최대 68시간의 현행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여야 할 경우 일부 사업장은 계획된 생산량을 맞추지 못해 납품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부품 업계가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가 주간연속2교대를 도입해 장시간 근로문제를 해결한 것과 달리 부품업계는 아직 주야2교대가 대세다. 각 조가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하는데 5일이면 50시간이어서 주말특근은 사실상 시행할 수 없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하면 대부분의 협력업체가 법을 어기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특잔업을 못하면 납품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법을 어겨서라도 조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계가 법을 준수하면서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공장을 증설하고 인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동차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산차 부품을 해외에서 역수입하는 것이어서 아주 복잡한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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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계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 전자회사 관계자는 “사무직은 큰 영향이 없지만 성수기 생산현장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개발(R&D) 분야 역시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전자 분야 대기업 관계자는 “특정 신제품 개발을 앞둔 상황에서는 개발 담당자가 하드워킹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상황에 따라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한데 초과근무 자체를 금지할 경우 기업마다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업계는 “현장을 모르는 처사”라며 울분을 터뜨린다. 특히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주물이나 단조 등 영세업체의 불만이 높다. 경기도 화성에서 스마트폰 배터리팩 제조사를 운영하는 A 대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방 소재 중견기업은 인력 수급과 설비 한계로 생산량이 줄고 계약기간 내 납품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경주에서 단조업체를 운영하는 B 대표는 “단조나 용접·주물·금형 등 뿌리산업 특성상 대기업 납품 기일을 맞추는 게 생명인데 근로시간을 확 줄여놓으면 어느 기업이 우리한테 일을 주겠냐”고 꼬집었다.

사업 특성상 영업시간이 길고 휴일 영업이 많은 유통업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C백화점 관계자는 “입점 브랜드에서 파견나온 사원들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면서 백화점·마트·아웃렛 등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쉬지 않고 사업장을 운영해야 하는 급식업계도 비상이다. D급식업체 관계자는 “갑자기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인력 추가 고용 등에 따른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며 “최저임금 인상 등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준비기간이나 적절한 단계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편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 시 한국 경제에 총 12조3,000억원의 비용 부담이 발생하며 이중 70%인 8조6,000억원이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민정·윤경환·신희철기자 next@sedaily.com

윤경환·신희철·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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