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철강기업인 고베제강의 품질조작 사태가 무려 10년 전부터 조직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져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제조업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품질로 승부해 온 일본 제조업의 명성에 또 한번 먹칠을 한 이번 조작 스캔들 발생 원인에 글로벌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외신들은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함몰된 성과우선주의와 지나친 ‘현장 중시’ 전략, 경직된 조직문화 등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후발주자의 추격에 쫓기는 상황에서 경영진의 무리한 목표 설정이 생산 현장을 조직적인 부정의 온상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제조업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성과우선주의를 도입한 한국 산업계 역시 품질관리 부실로 비싼 수업료를 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고베제강 사태는 한국 기업들에 또 한 번의 경중을 울리고 있다.
고베제강의 한 직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납기 지연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과도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현장에서의 품질 데이터 조작을 초래했다고 털어놨다. 생산시스템 개선 등 생산라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 없이 무리한 성과를 요구한 것이 근본적이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가와사키 히로야 고베제강 회장은 최근 건설기계 부문 악화로 실적이 2분기 연속 적자를 보자 자동차 경량화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알루미늄 부문의 증산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루미늄은 데이터 조작이 처음으로 불거진 부문이다. 모리오카 고지 간사이대 교수는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경영진이 현장에 과중한 책임을 부과하면서도 숙련 기술자를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설비 시스템 개선 등에 안일하게 대응한 점이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 특유의 현장중심 경영전략도 함정이 됐다. 기술 중시 풍토는 일본 제조업의 저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본사 경영본부와 생산현장과의 괴리를 초래하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일본을 뒤처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일본의 노동생산성(근로자 1명이 시간당 창출하는 부가가치)은 2015년 OECD 국가 평균을 밑돌 정도로 악화했다. 지난 10년 동안 ‘인더스트리 4.0’을 내걸고 제조업의 도약을 이룬 독일과는 대조적이다. 노동생산성이 OECD 35개국 중 최하위인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편 제품의 데이터 조작이 10년 이상 계속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의 배경이 일본 제조업 전체의 조직 문화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회사임원육성기구(BDTI)의 니콜라스 베네스 대표는 “일본 기업들은 사업부문 간 칸막이화가 심각하다”며 “문제가 발견돼도 내부적으로 충분히 공유되지 않으면서 또 다시 부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사회가 품질 조작을 미리 알고도 눈 감아 주는 등 임직원 전체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점도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꼽힌다. 맥쿼리의 피터 이돈 클라크 전략가는 “일본기업을 보면 이사회 구성원이 경영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외부인사보다 내부인사로 채워져 있다”며 경영구조에서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박민주·강도원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