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자의 눈] 갈팡질팡 책임회피 경찰이 아쉽다

이두형 사회부 기자



“피해 여중생 부모님께서 ‘피해자가 이양을 만났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려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겁니다.” 이영학의 여중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의 항변이다.

피해자 모친이 지난달 30일 실종 신고를 한 후에도 피해자는 12시간 이상 생존해 있었다. 경찰이 초동수사만 확실히 했어도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경찰은 그 탓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내 최모씨의 투신자살 및 성매매 강요와 기부금 유용, 퇴폐업소 운영 등 이씨에 대한 각종 의혹도 이제야 ‘뒷북’ 수사 전담팀을 꾸렸다.

피해자 실종과 이씨에 대한 의혹, 경찰이 이 중 하나만 제대로 수사했어도 무고한 희생자는 없었을 것이다. 경찰이 이씨가 의심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 보도된 이씨 아내의 투신자살과 성매매 의혹은 경찰에서도 정황을 포착하고 내사 중이었다. 이씨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수년간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아내는 지난달 6일 자택에서 뛰어내렸다.


이때 최씨의 이마에서 투신과 관련 없는 상처가 발견되고 자필이 아닌 컴퓨터로 작성한 유서를 이씨가 제출하는 등 단순 자살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또 경찰은 지난달 말께 이씨가 다수의 성관계 동영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성매매 알선 및 아내 성매매 강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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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증거 없이 의심 정황들로만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경찰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 실종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이제야 의혹 규명에 나선다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어도 한참 잘못됐다.

더군다나 사건의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리는 태도는 시민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이 결코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이다. 갈팡질팡 감을 못 잡는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 되레 가야 할 방향을 짚어주는 지팡이가 필요한 듯 보인다.

이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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