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시공권을 놓고 건설사들의 ‘진흙탕’ 수주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급기야 대형 건설사가 경쟁 건설사의 금품 살포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현금다발·명품가방 등 증거물 사진을 공개하고 경찰이 특별수사에 착수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수면 아래에 있던 건설사들의 불법적인 조합원 매수행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건설 업계 및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시공권 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설사가 재건축·재개발을 혼탁하게 하는 주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지난해부터 올해 강남 반포 잠실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뒷짐만 지고 있었던 당국과 도덕 불감증에 걸린 조합원들 역시 ‘공범’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금품 살포 앞장선 수주대행사, 배후에는 건설사=재건축·재개발 영업 일선에서는 용역(OS·아웃소싱) 업체가 실제 일처리를 도맡고 있다. OS 업체 중에는 단순히 인력만 공급하는 곳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 건설사들이 아예 수주 컨설팅까지 아울러서 수주대행 용역 업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략 5~6개의 주요 수주대행 업체들이 강남권 재건축사업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합원 10명당 1명 정도의 OS 요원이 투입돼 영업을 뛰지만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심한 곳은 3명당 1명이 투입된 곳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공사비 규모만도 2조6,000억원에 달했던 강남 재건축 ‘최대어’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 현대건설과 GS건설이 각각 수백 명의 OS 요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은 금품 제공 사례가 나타나면 OS 요원 차원의 일이라며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매일매일 건설사와 OS 업체가 현장에서 그날 영업 상황 등을 점검한다”며 “영업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건설사가 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도덕 불감증’ 조합원, ‘뒷북’ 당국도 공동책임=OS 요원들이 선물·식사·현금 등 각종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분위기에서 조합원들의 도덕 불감증도 재건축·재개발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요인이다. “남들 다 받는데 안 받는 사람만 ‘바보’”라는 심리가 팽배하다. 한 대형 건설사의 재건축·재개발 영업담당자는 “선물을 거절하는 조합원은 100명에 5명도 채 안 된다”며 “극소수 거절하는 조합원을 보면 존경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 재건축·재개발시장의 매표행위가 판을 치면서 서면결의제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부재자투표를 통한 매표행위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아예 OS 요원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조합원을 부재자투표소로 안내하는 식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반포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조합원들이 처음에는 몇만원짜리 식사도 꺼리지만 한번 받기 시작하면 수십만원짜리 선물, 나중에는 수백만원대의 금품까지 남들도 다 받으니 괜찮다며 스스럼없이 받게 되더라”고 말했다. 최근 강남권 재건축아파트에서는 부재자투표 당시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현금이 오갔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게다가 뒷북치는 당국의 대응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미 강남권 주요 재건축단지의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된 상황이다. 구청 등에서 현장점검을 하긴 했지만 단속을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OS 요원들이 홍보물들을 미리 철수시킨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서초구청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 점검반 인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구청도 노력하겠지만 조합도 자체적으로 클린센터를 운영해 불법영업에 대한 신고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진·한동훈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