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했던 후분양제는 아파트 착공 전 분양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아파트를 일정 단계 이상 짓고 분양하는 방식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공주택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하고 민간은 주택도시기금 지원과 택지공급 등 인센티브를 줘 희망 업체만 참여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야당도 후분양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민간 부문 전면 도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후분양제 찬성 측은 현재 선분양의 부실 시공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분양권 전매 등 투기수요 억제를 위해 전면적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후분양제가 바로 도입되면 소비자가 수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하고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견 건설사들은 사업 추진이 어려워져 결국 주택 공급이 줄고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제도 보완이 우선이라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 견해를 싣는다.
정부가 참여정부 시절 도입하려던 ‘공사 중 분양제(후분양제)’를 다시 추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하면 소비자 부담이 늘고 주택 공급도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난 2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을 통해 후분양제 도입 효과 등에 대해 연구용역을 맡겼다. 올해 8월 연구보고서에는 ‘후분양제 도입 시 선분양제와 비교하면 분양가격이 3~7.8% 오르고 이에 따른 소비자 대출이자 부담도 900만~1,110만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소비자로부터 미리 분양대금을 받아 그 돈으로 공사비를 조달하는 지금과 달리 건설사가 대출로 공사비를 조달해야 해 신용도가 낮은 건설사는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지고 그 결과 전국적으로 연평균 8만6,000~13만5,000가구 주택 공급이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입주할 때 붙는 가격 프리미엄이 크지 않고 분양권 전매가 상대적으로 어려워 투기수요 거래를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분양제도의 전면 도입보다는 시장 상황을 감안한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며 제도 도입에 앞서 건설사 금융 문제에 대해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주택 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
그래서 국토부도 전면적으로 도입하기에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 준비가 필요하며 향후 민간 부문은 전면 도입보다는 주택도시기금 지원이나 공공택지 우선 공급 등 인센티브를 줘서 원하는 업체만 후분양제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주택이 지어지기 전에 미리 입주자를 모집해 건설 자금을 조달하는 현행 선분양 방식을 지양하고 주택 완공 후 분양하는 후분양제도를 의무화하자는 게 정부의 취지다. 논의의 배경에는 크게 하자 발생에 따른 아파트 품질 문제, 가계부채 문제, 전매를 통한 투기 조장 문제를 선분양 방식의 부작용으로 인지하고 후분양제 도입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숨어 있다.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수요자 중심의 주택 공급 방식인 후분양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가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시장 상황을 감안했을 때 시기적으로 당장 후분양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이 과연 주택 시장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주택 품질 문제부터 살펴보자. 과거 후분양제 로드맵이나 최근 발의된 법률 개정안에서 논의되는 후분양제도는 공정률이 80%가량 진행된 시점에서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당장 후분양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공정률 80% 시점에서 전문성이 낮은 일반 분양 계약자가 주택 품질이나 하자를 직접 확인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품질 문제는 후분양제보다는 성능보장이나 품질보증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 역시 후분양제에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후분양제도는 분양대금의 지급 시기를 늦춰 선분양에 비해 부채의 발생을 늦추는 효과가 있을 뿐 부채 감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분양에 비해 짧은 기간에 자신의 신용을 기초로 스스로 주택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분양권 전매에 따른 투기 조장 해소의 관점에서 보면 전매 자체가 불가능한 후분양의 제도적 특성상 선분양에 비해 투기 과열을 방지하는 데 있어 보다 효율적인 공급 방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후분양제에서 안정적으로 주택 공급이 가능한 자본력을 갖춘 사업자가 많지 않다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후분양제의 성급한 도입은 대형 건설사 위주의 시장 과점화, 공급 감소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 및 전월세난 심화 등으로 되레 주택 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 상승 확산에 대한 우려 등으로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상황에서 성급한 후분양제 도입은 자칫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 기조와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주택 시장의 흐름과 선진국 사례 등으로 미뤄볼 때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후분양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현실 여건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과 체계적인 준비가 선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40여년간 주택 공급 방식으로 자리 잡았던 선분양제도를 후분양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은 단순히 주택 사업자와 소비자를 넘어 주택 시장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제도가 정착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대중 명지대 창의융합인재학부장·부동산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