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법원의 1심 판단이 나왔다. 합병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삼성물산과 일성신약이 1년 8개월간 벌인 법적 다툼이 일단 삼성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이 민사소송 결과라 형사재판인 이 부회장 항소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특별검사 측이 내세운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다’는 논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는 옛 삼성물산 지분 약 2%를 보유했던 일성신약이 회사(통합 삼성물산)를 상대로 낸 합병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하고 일성신약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삼성물산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경영 안정화 등의 효과가 있다”며 경영권 승계가 유일한 합병 목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지분을 0.35대1로 교환하는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산정됐고, 그 산정기준이 된 주가가 시세조종 행위나 부정거래 행위로 형성된 것이라는 등 (합병을 무효로 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과정이 위법하다’는 일성신약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공단을 대표한 이사장이 합병의 찬반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에 보건복지부나 기금운용본부장의 개입을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 사정에 비춰 공단 투자위원회의 찬성 의결 자체가 내용 면에서 거액의 투자 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합병 찬성에 따라 국민연금이 1,338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특검 주장도 빛이 바래게 됐다. 국민연금 동원 의혹은 수사과정에서 삼성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삼성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만일 1심에서 패소했다면 투자자로부터 합병 무효 소송이 제기될 수 있고, 내년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에서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삼성으로서는 최상의 결과를 얻은 셈. 삼성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병이 이뤄졌음을 법원이 인정한 거 아니겠느냐”며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원고 측의 항소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윤병강 일성신약 회장이 지난 9월 최종변론서 “사실 삼성을 아끼는 사람은 자신”이라며 “판결 아닌 화해나 조정을 원한다”는 심경을 밝힌 적이 있어 1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앞서 삼성물산은 2015년 7월 17일 주총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결의했고 그해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했다. 이에 일성신약과 일부 소액주주는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결정했다”고 합병에 반대하며 보유 주식을 사달라고 삼성물산에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1주당 5만7,234원을 제시하자 법원에 합병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과 별개로 주식매수청구가격의 적정성을 따지는 소송도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이번 1심 판결 취지(합병비율 등에 문제가 없다)로 볼 때 삼성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이다. /이상훈·이종혁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