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으로 여러분 내부의 소리가 묻히지 않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지난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명연설을 남겼다. ‘계속 갈망하라, 계속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더욱 유명해진 이 연설에서 잡스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진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좀 더 나은 가치를 찾아 퇴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요즘, 12년 전 잡스가 남긴 연설은 그래서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과거의 직장이 삶의 터전이자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자신과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7월 전국의 직장인 84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퇴사를 희망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695명 가운데 427명(61%)이 ‘현재 그렇다’, 251명(36%)은 ‘과거에 그랬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중 9명 이상이 적어도 한 번쯤 퇴사를 고민해봤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신입사원과 함께 중고참에 속하는 10년 차 안팎의 30대 중후반 직장인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은 왜 퇴사를 고민할까.
한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일하는 이한나(38·가명) 과장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퇴사 이유로 꼽았다. 이씨는 업무 특성상 회사의 먹거리를 찾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봐도 회사의 10년 후, 5년 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이야 대기업 과장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당장 몇 년 후를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함이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며 “요즘 창업 고민을 하는 지인들끼리 주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면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회사 동료인 남편과 의논한 끝에 앞으로 3년은 아이를 낳지 않고 창업 등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로 했다.
경직된 조직문화도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다. 청소년 진로상담사인 최예인(28)씨는 첫 직장인 창업교육 회사를 1년반 만에 그만뒀다. 최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대안을 찾아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창업을 지원하는 회사를 선택했지만 막상 취업하고 보니 조직 내 엄격한 위계질서와 맞닥뜨렸다. 최씨는 “창업 지원 관련 업무를 하면서 남들의 진로를 상담하고 도와주는 일이 내 적성에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면서 “하지만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는 내가 생각한 꿈을 펼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이 회사의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퇴사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입사 후 10년 안팎의 중고참 대열에 오른 직장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서울 논현동에서 직접 디자인한 가죽 재킷과 은세공품을 판매하는 이재명(38) 블라인드리즌 대표는 2010년 삼성전자를 퇴사했다. 사내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삼성 스마트폰의 내부 영상 그래픽을 설계하는 프로그래머였던 그는 입사 10년 차 과장 시절, 기계적으로 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해 퇴사를 결정했다. 그는 “삼성 입사 이후 줄곧 세상에서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스마트폰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열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며 “나이가 더 들면 손이 굳어 시도조차 못하겠다는 생각에 퇴사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사례도 많다. 건축가인 조대연(38)씨는 현재 노르웨이에서 유학 중이다. 우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정림건축사사무소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후 회사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그만뒀다. 지금은 노르웨이과학기술대(NTNU)에서 생태산업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물론 이들처럼 퇴사 후의 삶이 장밋빛 전망대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이혼이 혼란만 가중하는 것처럼 아무 준비 없는 퇴사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후 미술 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활약하다 2015년 미술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연수(가명)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후회의 연속이다. 이씨는 “미술 쪽 일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퇴사 후 창업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하지만 1년 넘게 최저임금 정도의 수입에 머물러 있고 최근에는 결혼까지 앞두고 있어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회사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나오는 순간 밖은 전쟁터”라면서 “패기와 무모함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퇴사 이후 상황도 시뮬레이션해보고 시간을 쪼개어 준비하는 절차가 있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