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과 은행은 영역이 다릅니다. 모험자본 공급은 자본시장이 주도해야 합니다.”
황영기(사진) 금융투자협회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초대형 IB의 시스템 리스크에 대해서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황 회장은 초대형 IB 인가가 늦춰진 것은 논의가 성숙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본지 18일자 1, 3면 참조
황 회장은 23일 ‘증권회사의 국내외 균형발전 방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초대형 IB의 부작용과 관련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초대형 IB로 인해 대출 규모가 커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기업금융에 쓰겠다는 자금은 5조~6조원에 불과하다”며 “이는 600조원의 달하는 5대 대형은행 기업금융 금액과 비교해 적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초대형 IB의 발행어음 인가 관련 안건을 지난주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다음 달로 연기했다. 초대형 IB 출범을 앞두고 국회 정무위원회와 금융혁신위원회·은행연합회 등에서 잇달아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증권회사보다 신용도가 높은 회사가 증권사와 거래하지 않는다”며 “담보가 없거나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모험자본이 증권사에서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 회장은 은행 대비 높은 증권사의 자기자본규제(레버리지 비율)와 관련해서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투협은 증권사의 발전을 위한 핵심과제로 △인수합병(M&A)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 △투자자 구분 세분화 △증권사의 5% 이상 지분기업에 대한 기업공개(IPO) 주관 배제 해소 △개인투자자 K-OTC 거래 양도세 폐지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과 엄중한 형사처벌을 주장했다. 증권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어 증권사의 재량권을 높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강력한 처벌을 명문화해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자본시장의 신뢰 부족이 야기한 문제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사례를 들었다. 그는 “해외 선진국은 합병기업 이사회에서 합병가액을 결정한다”며 “국내는 이사회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법률(자본시장법)로 합병가액을 결정해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황 회장은 “이사회의 재량권을 키워주고 기업가치평가를 담당하는 국내 IB 역할 역시 늘려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 보호는 보다 정밀한 투자자 구분을 통해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프로급 슈퍼개미 등 투자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만큼 이들을 전문투자자로 받아들여 자금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도록 규정을 손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기업의 상장 주관을 맡지 못하는 규정도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자본이 투입된 만큼 회사에 대한 책임감과 투자 회수에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논리다. 황 회장은 “주관사가 부도덕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재무제표와 기업가치를 투자자에게 호도했을 경우 증권사의 존폐가 걸릴 만큼의 강한 징벌이 내려진다면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상장 장외시장의 활성화 방안도 제시했다. 황 회장은 “개인투자자가 K-OTC에 거래할 경우 증권거래세 외에 양도세가 발생한다”며 “비상장 주식에 대한 장외거래는 어두운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자체가 침체돼버리는 악영향이 발생하는 만큼 모험자본의 투자유인 한 축이 되는 K-OTC 거래의 양도세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용 업계의 숙원 가운데 하나인 기금형 퇴직연금의 도입도 가시화될 것으로 봤다. 그는 “IFA와 ISA·로보어드바이저 등의 도입 이후에도 국민들은 은행을 더 믿고 있어 증권사로 ‘머니무브’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며 “국회 통과를 전제로 내년부터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2% 이하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4~6%의 연기금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