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13일 새벽6시께. A씨가 한강대로에서 경찰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그는 채혈을 한 뒤 경찰에게 “자신의 차량을 맡아달라”고 요구했다. A씨를 단속한 경찰관은 A씨의 차량을 몰고 경찰서로 돌아가다 사고로 숨졌다. 경찰관의 나이는 28세였다.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서 적발된 운전자의 차를 경찰이 ‘대리운전’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통상 음주단속에서 적발된 운전자는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이동시키거나 귀가 조치 한다. 남아 있는 차량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연락하거나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인계한다. 하지만 단속시간이 주로 새벽이라 가족 등과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적발자가 워낙 술을 많이 마셔 이런 조치를 하기 힘들면 경찰이 직접 운전해 경찰서 등으로 옮겨놓는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가 워낙 술에 많이 취해 있거나 감정이 상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차량을 경찰서에 보관한 뒤 다음 날 돌려주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대리운전비나 주차비는 받지 않는다.
음주단속에 적발된 차량을 운전하는 경찰들은 부담스럽다. 아무리 이동 거리가 짧고 익숙한 길이라도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동방법이 복잡하고 값비싼 고급 수입차를 운전할 때는 더욱 조심스럽다. 만약 경찰관이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아닌 경찰이 가입한 보험에서 처리된다. 지난해에만 5건이 경찰보험으로 처리됐다.
대한민국 경찰의 ‘음주운전 적발자 차량 대리운전’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서비스다. 미국에서는 음주운전 적발 시 차량을 즉시 강제 견인하고 운전자는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차를 찾아갈 수 있다. 캐나다도 차량 강제 견인 후 24시간 동안 운전자의 면허를 정지시킨다. 차량 견인 비용은 운전자가 전액 지급해야 한다. 경찰력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음주운전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행히 24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공포돼 내년 4월25일부터 음주운전 적발자 차량을 경찰이 견인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비용은 음주운전자의 몫이다. 늦게나마 경찰이 대리운전 서비스를 면하게 해준 것이다. 경찰력 낭비를 줄일 뿐 아니라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왜 이제야 이런 법안이 통과됐는지 아쉽고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내년에 시행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집회·시위 대응에 과도한 경찰력을 낭비하지 말고 민생치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찰력이 쓸데없이 소모되는 곳은 비단 집회·시위만이 아니다. ‘대리운전 서비스’처럼 경찰 본연의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더욱 세심히 살펴 쓸데없는 경찰력 소모를 줄여야 민생치안을 챙길 여력이 남는다. kmh20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