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금융권 해묵은 '채용부탁' 관행 수술 불가피

거액예치 고객 등 자녀채용 부탁

"영업중심 은행권 공공연한 비밀"

'부탁=100% 채용' 불가능하지만

내부 필기시험 도입 등 개선 필요

과도한 CEO 흔들기 관측도 나와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농협금융과 수출입은행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금융권 전반에 공공연한 비밀로 내려오던 외부의 ‘채용청탁’ 관행도 수술이 불가피하게 됐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은 특성상 영업이 최우선시되다 보니 오래전부터 거래선의 채용청탁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은행은 취업준비생이 가고 싶은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면서 이 같은 외부의 채용청탁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특혜채용이 실제 불거지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우리은행 인사팀이 작성했다는 ‘2016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추천 현황 및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16명의 이름과 생년·성별·출신학교와 함께 해당 인물의 배경이 되는 관련 정보와 추천인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한 지원자의 경우 관련 정보란에 ‘금융감독원 이○○ 부원장(보) 요청’이라고 쓰여 있으며 추천인에는 본부장으로 추정되는 ‘○○○(본)’이라 적혀 있다. 또 한 지원자의 배경은 ‘국정원 백○○ 자녀’라고 적혀 있으며 추천인에는 ‘○○○그룹장’이라 쓰여 있다. 추천인이 대부분 은행 거래고객이거나 사정기관에 소속돼 있다 보니 배경을 보고 자녀를 합격시켰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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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외부에서 추천된 지원자가 100% 합격할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허술하지는 않다. 블라인드 채용 등 은행 내부의 채용기준 등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추천이 곧 100% 채용’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경우도 외부로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추천된 인물의 정보를 기록한 것은 맞지만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는 수백 건의 추천 현황 가운데 합격자만 골라 새로 편집한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영업점 등에서 거액 예치 고객이 자녀의 채용을 부탁하는 사례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영업현장에서는 딱 부러지게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본점에 간단한 메모를 넣는 게 관행처럼 돼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외부에서 (채용) 부탁이 들어왔다고 해서 100% 합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거액의 자금을 예치하는 고객이나 기관·지방대학 등이 추천하는 지원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현황을 관리해오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더구나 지방균형 등을 배려해 지방대 졸업자를 일정 비율 합격자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민간은행의 채용은 순전히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 민간기업이 특혜채용을 했더라도 당사자 간 대가가 오간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한 사법 처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은행권에 ‘채용부탁’이 실제로 일어나는 데 대해 서류전형 등에서 어떤 식으로든 나머지 지원자의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된다. 우리은행도 이번에 영업점 관계자가 지인의 자녀 채용 부탁을 위해 고객을 팔아 허위로 ‘고객추천’이라고 본점에 보고했다는 정황도 드러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 내부서는 채용부탁이 있더라도 실제 채용은 엄격하게 관리되도록 서류전형에 통과된 지원자에 한해 내부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자성도 나온다. 전직 은행 고위관계자는 “영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외부의 채용부탁을 바로 거절하기 어렵고 나중에 고객에게 회신도 해야 돼서 추천인 현황을 관리할 수 있다”며 “실제로 추천을 받은 지원자들의 면면을 보면 뽑힐 자격이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은행도 채용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나름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만에 하나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지원자가 외부 추천 영향으로 채용될 수 있는 길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내부 시험을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은행권 전반의 빙산의 일각인 채용 비리 수사를 확대하는 게 은행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을 교체하기 위한 흔들기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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