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대통령의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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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원년 개막식이 열린 1982년 3월27일 서울 동대문 야구장의 분위기는 어딘지 어수선했다. 프로야구 시대가 열렸다는 기대감이나 경기에 따른 중압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6개 구단 선수와 심판 중에 못 보던 얼굴들이 많이 보였고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건장한 이들이 더그아웃을 찾아와 배트를 모두 치우라고도 했다. 이유가 곧 밝혀졌다.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를 위해 등장한 것이다. 방송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시구를 받은 MBC청룡의 포수 유승안은 사인을 받기 위해 대통령에게 뛰어가다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고 화장실에 갔던 선발투수 이길환은 사태가 정리될 때까지 투수판을 밟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의 시구는 시국만큼이나 살벌했다.


동서양을 통틀어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국가원수가 시구를 한 것은 1910년 윌리엄 태프트 미국 대통령이 처음이다. 초창기에는 대통령이 관중석에서 선수에게 공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마운드로 내려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면서 새로운 관행이 정착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의 경우 1994년 4월4일 빌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힐러리는 시카고 컵스에서 각각 시구를 하는 진풍경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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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구가 모두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성 추문과 화이트 게이트로 곤경에 처했던 1995년 볼티모어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는 수모를 당했고 2013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화를 규정한 헌법 96조 개정 의지를 담은 등번호 96번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주변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삼풍·성수대교 참사로 환영받지 못한 시구를 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깜짝 시구를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전두환·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다섯 번째다. 문 대통령의 등장에 구장에 모인 관중이 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 환대가 단지 대통령에게 공을 잘 던지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가슴에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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