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러브콜’을 많이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앞으로도 그쪽 동네를 기웃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는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라며 이같이 잘라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맡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에 잠시 참여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최 교수가 현실정치에 관여한 이력은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교수는 본업인 학문에 충실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여의도에서 ‘플레이어’로 활동 중인 국회의원들이 더 많이 읽고 공부해야 한국 정치의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학교 정년퇴임 이후 지난해 10월부터 싱크탱크인 ‘정치발전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치발전소는 지난 2013년 ‘유쾌한 정치실험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뒤 3년간 활동을 이어오다 지난해 10월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적 이슈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공론장’은 거의 해체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론적 기반 없이 권력투쟁을 바탕으로 한 이전투구에만 집중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치열한 공부를 통해 실력을 갖춰야 정당 역시 조직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결사체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굵직굵직한 현안이 터져도 논평을 하거나 의견 밝히기를 꺼리는 학자로 유명하다. 수많은 정치학자가 언론 기고나 매체 출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학자는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일이 현안을 따라가며 논평하는 것은 학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며 “학자의 본분은 좀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찰과 연구를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최 교수 연구실에는 학문을 대하는 그의 겸허한 태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조그마한 방의 양옆에 놓인 서가에는 해외의 최신 서적들이 빼곡했으며 문서 파일이 띄워진 컴퓨터 모니터에는 최 교수의 집필을 기다리는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다.
최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으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잠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는 고려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뜻밖에도 청와대 근무는 유학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학생운동을 한 탓에 졸업하고 곧바로 유학을 가기가 힘들었어요. 당시 군사정권은 학생운동 이력이 있는 사람을 쉽게 유학을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해외유학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방도로 청와대 근무를 지원한 겁니다. 청와대에서 일하면서도 나의 길은 ‘학문’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았어요.” 그는 한국 정치에 죽비와 같은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