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990원도 무너져...'수출 외바퀴' 한국경제 엔저發 위기론 솔솔

아베 선거 승리로 엔저 가속...美금리인상 맞물려 더 심각

반도체 등 수출 호황이 이끈 경기회복세 찬물 끼얹을수도

수출입銀 "원엔환율 10% 하락하면 수출 평균 4.6% 감소"







플라자합의(1985년) 이후 1달러당 240엔이던 일본 엔화는 120엔으로 반토막이 났다. 엔고의 열매는 우리 몫이었다. 수출액은 303억달러(1985년)에서 607억달러(1988년)로 두 배나 뛰었다. 주가도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하지만 엔고의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989년부터 엔저가 지속되자 우리 수출 증가율은 전년도 28.4%에서 2.8%로 곤두박질쳤다. 엔고에 춤추는 우리 경제는 그 뒤로도 자주 발생했는데 1990년대 중반은 뼈아팠다. 엔고의 종식과 함께 1997년 한국 경제는 최악의 시련기로 접어들었다. 결국 외환위기까지 감내해야 했다.

엔화의 흐름은 이처럼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석유화학이나 철강·기계·자동차 등은 엔화에 따라 수출의 변동 폭이 크다. 원·엔 환율이 10% 떨어질 때 석유화학의 수출은 13.8% 줄고 △철강 -11.4% △기계 -7.9% △자동차 -7.6% △가전 -6.9% △정보기술(IT) -6.9% 등 주력제품 대부분의 수출이 크게 떨어진다.

문제는 최근 원·엔 환율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30일 원·엔 환율은 전날보다 41전 떨어진 989원31전으로 마감하면서 990원 밑으로 밀렸다. 추석 직후 1,000원 선이 깨지더니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엔저는 일본 정부의 의도된 정책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용인하에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명분을 내걸고 엔화 약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은행(BOJ)도 통화완화정책을 이어갈 태세다. 22일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이 중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재정지출 확대와 대규모 통화완화정책을 골자로 한 ‘아베노믹스’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졌다. 오는 2018년 4월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연임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엔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미 구로다 총재는 15일(현지시간) “공격적인 통화완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당분간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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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아베노믹스로 인해 엔저 시대는 최소 2~3년간 더 지속될 수 있다”면서 “더 큰 걱정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맞물린 엔저의 지속인데 한국 경제에 상당한 악재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원·엔 환율이 떨어진 건 1년 넘은 현상인데도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수출이 계속 올라가서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이는 반도체 수출이 너무 좋은 데 따른 착시현상 때문으로 지금부터 경각심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엔저 장기화는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은 평균 4.6% 감소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5% 더 떨어지면 수출은 1.4% 줄고 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심혜정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엔저 현상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라며 “우리 기업들이 대일본 소재부품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우리 수출기업이 송금(환리스크)하고 이런 데는 부담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일본 기업과의 가격경쟁력 격차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엔저의 장기화가 수출에 미칠 부작용도 크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엔화 약세로 수혜를 본 일본 기업의 체질 강화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제품 품질의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 시기에 가격경쟁력 대신 투자를 늘리고 수익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엔저를 기반으로 최근 2~3년간 설비와 R&D 투자를 대폭 늘려 우리 수출기업과의 경쟁력 차이를 더욱 늘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출 문제가 아니라 엔화 약세로 수혜를 본 일본 기업의 체질개선에 따른 후폭풍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의 체질도 강화된 만큼 과거만큼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나 일반 전자 소비자 제품이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과 경합도가 굉장히 높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전자제품 소비재는 현지공장으로 많이 진출했고 소재 부품 분야 수입품 가격이 싸지면서 우리나라 수출품의 원가경쟁력이 더 높은 측면도 있어 과거와 비교해 엔저가 우리 수출의 가격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낮아졌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전반적으로 우리와 일본 간의 주력산업이 많이 차별화돼 기업들이 과거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이현호·빈난새기자 hhlee@sedaily.com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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