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대환칼럼] 직진 신호에 후진한 국정감사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법안·예산·개헌 등 현안 산적한데

與 지난 정부 '적폐청산' 강조

현 정부 국정운영 검증엔 소홀

野도 "前前前前"만 외치며 맞불

정쟁 매몰되며 국감 파행 내몰아

김대환 전 노사정위원장




현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된 국정감사가 파행적으로 끝났다. 인수기간 없이 출범했음에도 연일 업무 지시와 정책 발표를 쏟아낸 만큼 이번 국감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헌법에 규정된 대로 국정 전반에 대한 국회의 감사로 그동안 쏟아낸 것들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잘 이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를 밝힘으로써 현 정부의 지향과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나 이 직진 신호를 무시하고 후진함으로써 결국은 사고로 이어진 것이 이번 국감이다. 언론의 ‘맹탕’ 국감이라는 평가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인 신호 위반은 이번 국감을 ‘적폐 청산’의 장으로 삼겠다는 여당의 공포와 동시에 예고됐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는 전(前), 전전 정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기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되면 국감의 취지가 왜곡돼 원래 대상인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감사는 건너뛰거나 건성이 될 수밖에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적 기지의 발휘라고도 보이지 않는다.


여당에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야당, 특히 제1야당은 여당이 설정한 적폐 청산 프레임을 깨기는커녕 전전전, 전전전전 정부를 대상으로 ‘맞불’을 놓음으로써 이 프레임이 오히려 굳어지고 이 때문에 국감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진이 가속화된 것이다. 정책감사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약할 수밖에 없는 맞불에 의존한 것은 증인 신청 단계부터 드러났고 결국은 지리멸렬한 야당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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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든 ‘신적폐’든 ‘원조 적폐’든 폐단은 반드시 청산돼야 하지만 국감에 올릴 사안이 아니다. 현 정부가 적폐 청산을 국정의 제1과제로 내세웠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자리’를 내세워 헷갈리기도 했지만) 올렸다면 여당은 그 개념부터 정립하게 함으로써 현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따른 정치 보복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했다. 야당은 각 부처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 책임자를 증인으로 신청해 이를 검증하는 접근을 해야 했다. 적폐 청산이 블랙홀이 돼 상호 폭로와 압박 등 꼴사나운 정쟁으로 이번 국감이 파행된 데 대해 국회는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 때와 장소는 물론 사안을 가리지 않고 싸움박질(만) 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국민’을 다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국감으로 국정이 개선돼나가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특히 이번 국감에서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부가 발표한 생경한 용어의 정책기조를 비롯해 일자리 대책은 물론 숨 가쁘게 이뤄진 대통령의 업무 지시 등이 적법하고 적절한지, 세금은 제대로 쓰는 것인지, 차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지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소박한 국민들의 기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여당은 새로운 정책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구하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야당은 국민을 위한 검증과 견제를 내동댕이쳤다. 국민들은 직진하라고 했지만 정치권이 국감을 후진시켜 후진국형 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정치권이 법안·예산·개헌 등 주요 현안을 놓고서도 이런 행태를 거듭한다면 국민들은 정치권 자체를 ‘적폐’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국감 무용론이나 국회의 ‘슈퍼 갑질’ 및 의원의 특권 철폐 등과 같은 기술적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근본적이고도 구조적인 수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 표밭의 나약한 식물이 아니다. 배를 띄운 국민은 배를 뒤집을 자격과 힘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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