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국회 시정연설이 추가경정예산 통과에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경제·사회개혁·북한·개헌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을 밝힌 게 특징이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우리 사회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며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숫자 일일이 언급하며 경제 강조=이날 문 대통령은 예산안 시정연설인 만큼 파워포인트에 그래프를 띄우고 구체적인 수치를 직접 언급하며 예산·세법개정안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 예산안 총지출은 429조원으로 올해보다 7.1% 늘어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증가했다”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 예산을 2조1,000억원 대폭 증액한 19조2,000억원으로 편성했다”며 “특히 청년에게 가장 절실한 것으로, 고용상황이 개선된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도 언급하며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그만큼 더 존경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를 39번 언급해 ‘국민(70회)’ 다음으로 많이 말했으며 ‘예산’도 27번이나 이야기했다. 아울러 ‘사람중심 경제’ 정책을 소개하며 “이는 우리와 후대를 위한 담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안보와 민생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운영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주문했다.
◇핵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을 것=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 △비핵화 △남북 문제 주도적 해결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 △북한 도발 시 단호 대응 등 번호까지 붙여가며 다섯 개의 원칙을 재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공동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용납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며 “우리도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 개발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 무력충돌은 안 된다”며 “대한민국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식민과 분단처럼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운명이 결정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북한 도발과 관련해서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국제사회와도 적극 공조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북핵에 대한 초당적 협력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앞에 정부와 국회, 여와 야가 따로일 수 없다”며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초당적 협조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반드시 혁파=공공기관 채용비리 혁파를 강조하고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등 적폐청산에 대한 의지도 재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누구라도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바꿔나가는 게 적폐청산”이라며 “권력기관의 개혁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드러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청년들이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줬다”며 “공공기관이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조적인 채용비리는 반드시 혁파하겠다”며 “실태를 철저히 규명해 부정행위자는 물론 청탁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기관과 공공 부문,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부정과 부패·불공정이 국민의 삶을 억압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더 이상 반칙과 특권이 용인되지 않는 나라로 정의롭게 혁신하겠다. 국회도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지시했으며 비리가 밝혀질 경우 합격 취소 등 소급 적용도 검토할 뜻을 나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