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박연차(72·사진) 태광실업 회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 큰 타격을 입혔던 ‘박연차게이트’는 당시 정권 실세 등 21명이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사법 처리된 사건이다. 박 회장은 올 들어 대선 공약인 도심재생뉴딜·에너지정책 등과 연관된 계열사에 친인척을 집중 배치하고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등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태광실업의 상장 계열사 휴켐스와 정산애강의 주식 변동과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이후 지분 확대 및 경영권 강화 움직임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회장은 2014년 2월 출소한 후 국내 사업보다는 신발 제조사인 태광실업을 통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사업에 전념해왔다. 대형 스캔들의 장본인인 박 회장이 국내 사업을 키우기에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박 회장의 가석방을 불허한 경우만 봐도 그렇다.
휴켐스 지분율 33.63%까지 높여
정산애강 감사 자리엔 아들 선임
사위 펀드는 발전정비업체 인수
베트남 사업 등에도 보폭 넓혀
숨죽였던 박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이 절정이던 3월 초다. 그는 휴켐스 지분 7.33% 가운데 3.35%(13만6,700주)를 313억원에 태광실업에 넘겼고 태광실업은 휴켐스 지분율을 33.63%까지 높였다. 게이트 당시 박 회장은 2006년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20억원을 건네 뇌물공여 혐의로 실형을 받기도 했다. 같은 달 정산애강은 박 회장의 아들인 박주환 태광실업 전략기획실장을 감사로 선임했고 박 회장의 딸 박주영씨도 임원의 지분을 사들이며 정산애강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눈에 띄는 대목은 휴켐스와 정산애강 두 회사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50조원이 투입되는 도심재생뉴딜사업과 맞닿아 있는 점이다. 휴켐스 자회사 일렘테크놀로지는 친환경 배관용 자재를 생산하고 있고 냉난방용 배관재 업체인 정산애강도 지난 대선 때 도심뉴딜의 대표 테마주였다. 정산애강 자회사 지메텍은 친환경 소재인 무기물로 단열재를 만든다.
아울러 휴켐스 사외이사는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이자 게이트에 휘말려 뇌물수수로 3년6개월형을 받은 박정규 변호사이고 정산애강은 부산지검 특수부장 출신으로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박태규 변호사가 사외이사다. 박원순 서울시장 임기 동안 진보 성향의 협동조합이 태양광 보급 사업을 대거 따낸 것처럼 박 회장도 인맥을 이용해 도심재생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공교롭게 박 회장 일가는 문 정부의 탈석탄 정책과도 맞물려 관련 사업에 의욕적이다. 태광실업은 올 상반기 남부발전 등과 베트남 남딘 석탄화력발전사업을 따낸 휴켐스 자회사 태광파워홀딩스의 지분 20%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특히 박 회장의 사위 이승원 칼리스타캐피탈 대표는 사모펀드를 통해 9월 민간발전정비업체인 에이스기전을 사들이는 등 총 7개의 민간발전정비업체 중 네 곳을 인수했다. 이와 관련, 국정감사에서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이 “박연차 회장의 사위가 운영하는 사모펀드가 국가 기간산업인 발전정비사업을 장악해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이 같은 박 회장의 행보가 적폐 청산을 추진하는 문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은 적폐 청산에 맞서 ‘640만달러 뇌물 수수 사건’을 재수사하자며 노 전 대통령 일가와 박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태광실업 관계자는 “각 계열사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구경우·김우보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