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김대중·노무현 계승한다는 이 정부

이상훈 산업부 차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연한 리더였다. 정권 출범기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하며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떠냐”고 했던 그는 4년 뒤인 지난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변화의 전조는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1년 차에 해외를 돌고 나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 밖에 나가보니 기업이 애국자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을 내각에 기용하는 등의 행보로 ‘참여정부가 삼성공화국이 됐다’는 비아냥도 감수했다. 그뿐인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보란 듯 십자포화를 퍼붓는 자신의 진영을 향해서는 “현실을 직시하자”며 어르고 달랬다. 이런 극적 변화는 고비 때마다 ‘이념’ 대신 ‘국익(실리)’을 택한 ‘정치인’ 노무현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시계를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집권기로 더 돌려보자. 그의 회고록에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싫은 소리 모진 소리도 많이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괴롭혔을까. 바로 노동개혁이었다. DJ는 통념과 달리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대통령이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명밧줄(100억달러)’을 얻기 위해 대선공약이었던 ‘정리해고제 2년 유예’를 포기했다. 또 공기업 노조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1개사의 민영화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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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DJ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권을 보자. 새 정부는 출범 이래 노동계에 단 한 번도 고언을 한 적이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공공 부문 성과제 폐지 등 노동계에 선물만 잔뜩 안겼다. 선물을 너무 많이 줘 노조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유인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대 진영에서는 “‘촛불 채권’을 들이미는 노조에 정부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고 비꼬기까지 한다. 답답한 것은 마치 노조가 ‘약자’인 양 정부가 챙기고 있지만 이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 전 르노삼성차 사장은 “일손이 달려도 사람 뽑기가 겁난다”고 했다. 정부가 노조 기득권을 보호하는 통에 고용 유연성이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인을 보면 내공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다. DJ도 노무현 대통령도 노조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았지만 이들은 ‘개국공신’인 노조에 ‘대접’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두 전임 대통령은 노조와 밀고 당기며 국익을 챙길 줄 알았다. 신기루 같은 대중의 인기에 집착했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동개혁은 우파보다는 좌파 정권에 유리한 면이 있다. 노조 입장에서 아무래도 좌파 정권과 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좌파 정부가 노동개혁을 하면 그 진정성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도 낫다. 그런 관점에서 현 정부는 영민하지도 전략적이지도 않다.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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