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공정위장, 5대그룹 간담]'자율' 가장한 김상조의 재벌개혁 선전포고

지주사 수익구조 등 전방위 압박에

5대그룹 대표 공개적 발언 자제

"공정위 본연역할 벗어나지 말아야"

2일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5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만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며 ‘변화의 방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난 6월 첫 만남에서 ‘변화의 시작’만 요구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먼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를 언급하며 미리 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대기업 그룹이 공익사업을 위해 공익재단을 세웠지만 계열사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오너 일가의 우회적 지배에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20대 그룹의 40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 주식 규모는 총 6조7,000억원이다. 삼성그룹만 해도 삼성문화와 삼성복지·삼성생명공익 등 3개 재단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핵심 상장 계열사 지분을 2조9,874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 민간재단인 삼성꿈장학재단이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 관련자에서 제외된 점에 대해 다시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상조(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5대 그룹 간 정책간담회’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권욱기자김상조(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과 5대 그룹 간 정책간담회’에서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권욱기자




지주회사의 수익구조를 들여다보겠다고 예고한 것 역시 공정위가 제재에 나서기 전 알아서 변화해달라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주회사의 주요 수입이 자회사로부터의 배당금이 돼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브랜드 로열티, 컨설팅 수수료, 심지어 건물 임대료 등의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각 그룹의 특수한 이슈를 미리미리 점검해달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소관을 벗어나는 요구조건도 세 가지나 덧붙였다. 하도급 거래의 공정화를 위해 구매부서 실무 임직원들의 성과평가 기준을 상생협력을 잘하는 직원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바꿔달라는 게 첫 번째다. 또 노사정 관계에서 사용자단체의 역할이 실종됐다며 건전한 대화의 파트너로 제자리를 잡아달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주주권 행사 모범규준에 맞는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마련해 기관투자가들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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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만 놓고 보면 사실상 재벌개혁을 본격화한다는 ‘선전포고’ 성격이 강하다. 5대 그룹에 ‘자발적’ 변화가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오는 12월부터 기업집단국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포석도 함께 놓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만남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화기애애했던 지난 만남과 달리 5대 그룹 대표들은 김 위원장의 인사말을 듣는 내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공개적인 발언을 피했다. 이러한 재계의 분위기를 감지한 듯 김 위원장은 곳곳에 ‘몰아치기식’ 변화는 경계한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특히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시간을 더 달라는 기업의 요구에 대해서 “변화 결과가 아닌 변화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의 시간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재계에 던진 숙제에 대해 공정위의 역할 안에서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나오라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안 나갈 수 없다”면서도 “대기업들은 철저하게 법적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에 공정위도 본연의 역할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발적 변화와 더불어 법적 보완도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직 공정위의 한 고위인사는 “기업들은 겉으로 시늉은 할 테지만 법을 바꾸지 않으면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시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공정위가 현재 추진하는 방안들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지속 가능한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광우·조민규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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