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 분야의 세계적 강자 메릴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상업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흡수합병됐다. 상업·투자은행이 결합한 ‘세기의 결혼’을 이끈 중매쟁이는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 의장이었다. 위기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미 금융당국의 팔 비틀기였던 것이다. 금융위기 이듬해 정권을 차지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 정부 때 초래된 금융위기를 좌시할 턱이 없었다. 그래서 열린 게 금융위기 청문회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두 회사의 합병은 샷건웨딩(shotgun wedding)”이라며 “누가 총을 들이댔는지 찾아낼 것”이라고 별렀다. 결국 켄 루이스 BoA메릴린치 회장은 “폴슨과 버냉키가 메릴린치를 인수하지 않으면 경영진을 물갈이할 것이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샷건웨딩의 원래 뜻은 강압에 따른 결혼이다. 미혼의 딸이 임신하면 아버지가 예비 신랑을 찾아가 엽총을 들이대고 “결혼 할래 말래” 종용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다니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유산이지만 지금은 임신해서 급히 한다는 ‘속도위반’ 결혼을 일컫는 말로 진화했다. 지금도 미국 결혼식에서는 종종 장인 또는 신랑·신부 들러리들이 엽총을 들고 입장하고는 한다. 물론 결혼식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코믹 이벤트다. 엽총 퍼포먼스에는 신부를 지킨다는 다짐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임신했다고 강제로 결혼시키는 샷건웨딩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유명 연예인 가운데 속도위반 결혼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는 경우도 있다. 속도위반으로 탄생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학술지 ‘한국 인구학’ 최근호에 2015년 태어난 첫아이의 17.8%가 혼전임신으로 출생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출생과 혼인 시점을 비교 분석한 결과로 2001년에는 이 비율이 7.5%에 불과했다니 놀라운 변화다.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는 게 요즘 세태인데 청춘남녀가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곧 아이를 출산한다면 이보다 더한 가족 경사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요즘은 예비 며느리가 혼전 임신을 하면 혼수를 해왔다고 하지 않나. 축복받을 일이다. /권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