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 눈] 혼자만 활짝 웃은 김상조 공정위원장



“파이팅 한 번 하시죠.”

지난 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20층. 정책간담회를 하겠다며 5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 간판급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모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수십 명의 취재진을 향해 활짝 웃으며 ‘파이팅’ 제스처를 유도하는가 하면 기업인들에게 양팔을 쭉 펴며 착석을 권하는 여유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5대 그룹 최고경영자들을 양옆에 앉혀 놓고 “대기업 공익재단을 전수조사하겠다” “지주사 수익구조 실태를 점검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기업 총수가 공익재단과 지주사를 불법 활용해 사익을 취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기업인들을 벌주듯 나란히 앉혀놓고 공개적으로 조사 계획을 운운하며 우격다짐하는 듯한 모습에서 웬만한 정치 쇼 뺨친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지어 김 위원장이 밝힌 전수 조사는 위법 논란뿐 아니라 공정위 권한을 넘어선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위원장이 국민 앞에서 기업을 잠재 범법자인 양 몰아붙이는 것은 권력자의 오만이다. 기업인들은 이날 영락없는 들러리로 동원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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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행동은 ‘쇼통(Show+소통)’ 비판을 받는 문재인 정부의 전형이었다. 현실 여건은 외면한 채 편향적인 정책만 일방적으로 주문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지난 6월 4대 그룹 경영진에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강구하라’며 데드라인을 정해주더니, 4개월여 만에 ‘숙제를 안 해왔다’며 다그치는 모습은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5대 그룹의 자산 규모만 1,0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인데 반년 만에 지배구조 개선안을 뚝딱 가져올 리 만무하다. 이들을 구멍가게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김 위원장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께 약속한 공약에 비춰볼 때 기업의 개혁 의지에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공약을 내건 주체는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지 기업이 아니다. 기업도 정부 정책을 따라야 하겠지만 대선 공약대로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대놓고 망신을 주는 것은 민간에 대한 완장 찬 권력의 횡포다.

김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는 25분여 동안 5대 그룹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허공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간간이 한숨도 내쉬었다. 죄인으로 내몰린 기업인들의 한숨 소리가 김 위원장에만 안 들렸나 보다.

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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