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지난달 31일 발표된 한중 협의로 많은 한계를 남긴 채 봉인된 가운데 오는 10일부터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본격적인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밝힌 ‘2050년까지 최강국이 되겠다’는 청사진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 사이에 놓인 우리 정부는 숙제를 한 아름 떠안은 모양새다.
◇미중 파워게임에 한국외교 시험대 올라=중국의 외교 목표는 건국 100주년인 오는 2049년에 종합적인 국력과 국제 영향력 면에서 세계 선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인류 운명공동체의 건설 추진’이라는 외교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중국식의 새로운 질서를 짜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이다. 이는 중국이 선두국가가 되기 이전이라도 영토·주권 등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규정된 사안에서는 중국이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시진핑 2기의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힘자랑을 할 가능성이 높고 도널드 트럼프도 여기에 쉽게 질 사람이 아니다”라며 “미중 관계가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 도발 나서면 사드 추가배치 가능성 열어야=한중 정상회담의 관건은 지난달 31일 발표된 ‘한중 관계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로 임시 봉인된 사드 문제를 어떻게 최종적으로 봉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시 주석이 규정한 핵심이익에 포함된다. 한중 간 갈등이 한반도 사드 배치로 인해 촉발됐고 ‘추가 사드 배치는 없다’는 말로 봉인된 만큼 또다시 사드를 놓고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현재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의 수도권 방어 효과에는 한계가 있어 사드를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사드 추가 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기는 했지만 북한의 위협 수위에 따라 추가 배치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밝힌 ‘3NO’ 원칙이 중국에 대한 약속이나 합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은 앞서 “사드 추가 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체계에 편입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 장관의 발언을 두고 “한국 측은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충실히 지킬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가 문제를 제기해 중국은 ‘약속’이라는 표현을 ‘입장 표명’으로 바꿨다.
◇북핵 제재에 중국 참여 유도 필요=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 제재를 가한 데 대해 우리 기업들의 피해 규모를 설명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을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중 협의에는 사드 보복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감 표명이나 재발방지 약속은커녕 ‘사드 보복’이라는 단어조차 언급이 되지 않았다. 이에 후속 조치로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와 관련된 표현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과 연계해 중국 정부와 북핵 공조를 보다 강화할 필요도 있다. 진 소장은 “중국이 전략적으로 한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지렛대로 잘 활용해야 한다”며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평화적 해결이라는 점에서 한중 간 이견이 없으므로 정상회담을 통해 힘을 합치자는 의사를 강하게 나타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