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끝나지 않은 은행 파벌싸움-하] 정치권-계파 끈끈한 연줄...정권 바뀔 때마다 자리다툼 '악순환'

정권 바뀔때면 자리 다툼 악순환…경영공백에 조직 골병

내부 계파갈등 지속…외부 낙하산 불러오는 명분 제공도

새 경영승계 시스템·성과 중심 조직관리 체계 마련해야

우리銀 5일 이사회…예보이사 임추위 포함에 관치 우려

0415A10 금융사CEO승계시스템




과거 KB금융은 외부에서 온 낙하산 인사로 인해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을 기점으로 주요 임원들이 싹 바뀌며 조직이 분란해지는 것을 10년 가까이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니 지속 가능한 경영은 온데간데없이 파벌을 중심으로 줄대기와 눈치 보기만 횡행했다. 좋은 맨파워를 갖고도 신한금융에 실적으로 밀려 리딩뱅크 지위도 잃었다.


지난 9월 초 KB금융 차기 회장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청와대 인맥을 등에 업은 부산 출신 OB인 A씨가 유력하다는 등 다양한 설이 난무했다. 이때도 KB금융 내부의 특정세력이 A씨와 물 밑에서 호응을 해왔다는 설이 파다했다. 여기에 KB노조도 투명성과 절차 문제를 제기하며 윤종규 회장 연임 반대를 외쳤다. 다행히 KB 사외이사들이 굳건한 방어막을 치고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해 윤종규 회장을 단독 후보자로 추천하면서 이 같은 외풍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 최영휘 KB확대위원장은 “어느 정도 지속적인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게 좋지 않다”며 “3년 임기 동안 열정을 바쳐서 열심히 했고 경영실적이 동종업계보다 나쁘지 않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노조와 내부 특정세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내부 계파로 수개월째 힘만 뺀 곳도 있다. BNK금융과 수협은행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BNK금융은 김지완 회장과 이동빈 은행장을 각각 선임해 자리를 잡아 가고 있지만 이런 결과를 내기까지 이사회 내부는 계파성격에 따라 밀고 밀리는 갈등을 수개월째 이어가야 했다. 이사회가 정확히 반으로 갈려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사이 경영 공백만 길어졌고 내부 갈등만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고객들을 불안하게 하고 내부 조직의 동요를 불러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지만 누구 하나 휴전이나 양보는 없었다. 치킨게임처럼 죽기 살기로 서로의 진영에 지지 않기 위해 ‘내부 전쟁’을 한 것이다.

이런 계파 간 분란은 정권교체 전후나 회장 임기가 다가오면서 표면화된다. 익명의 한 전직 고위관료는 “정권이 바뀌고 협회장을 포함해 정무적 교체가 일어나는 걸 갈수록 전리품처럼 생각한다는 건 개탄할 만한 일”이라며 “5년마다 이러니 계파별로 줄 설 생각만 하고 투서를 뿌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라는 내부 갈등을 계기로 이광구 우리은행장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만큼 차기 행장 선출에 있어 임원추천위원회가 독립적이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우리은행은 현재 과점주주가 추천한 5인의 사외이사가 임추위 구성원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리은행은 과거 어떤 후보가 어떤 절차로 선임되는지 모른 채 정부가 정하는 대로 은행장 이름만 통보받았을 정도였다. 낙하산 인사는 조직에 자기 사람을 심고 전임자 경영전략을 뒤집는 폐해를 불러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예금보험공사 지분 18.78%로 인해 민영화가 됐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정부 것으로 여긴다”며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으로 인한 금융권과 연관이 없는 외부 낙하산 인사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특히 이번 행장 선임에는 예보 측 비상임이사가 임추위에 포함될 것으로 보여 정부의 입김이 개입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지난번 때와는 달리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측 생각이다. 이 때문에 현재 검경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금융회사에 대한 수사나 이광구 회장 퇴진의 이면에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경영진을 교체하기 위한 거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월 이광구 행장이 선정될 때는 ‘최근 5년간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지주의 전·현직 부행장급(지주는 부사장급) 임원과 계열사 대표이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공모를 받은 뒤 11명의 지원자 중 6명을 1차 면접 대상자로 선발하고 다시 3명으로 압축한 뒤 마지막 토론면접을 통해 최종 후보자를 낙점했다. 우리은행 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후임 은행장 자리에는 정권의 입맛에 맞춘 논공행상식 낙하산 인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새 은행장은 민영화된 우리은행을 외압과 관치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도덕성을 검증받은 내부출신 인사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 계파 갈등으로 CEO가 물러난 상황에서 순번상 차례라 하더라도 한일은행 출신 인사가 행장에 오르면 봉합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경우 내부 자정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외부 인사를 불러오게 하는 명분을 주게 된다. 우리은행은 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차기 행장 선임을 논의한다.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이달 중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은행 내부 파벌싸움을 최소화하려면 차제에 새로운 경영 승계 시스템과 성과 중심의 공정한 인사, 조직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점주주하에서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을 확립하고 내부를 통합해 조직 역량을 극대화하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실적이 좋아도 안팎 흔들기에 속수무책으로 낙마하는 허약한 지배구조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탁월한 성과로 역량을 갖춘 장수 CEO가 만들어질 필요성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명시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승계 규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독립적인 이사회가 갖춰져야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이 규제 대상이 되다 보니 외부 압력에 취약한 구조”라며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줘 청탁이 들어와도 거절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원·조권형·서일범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