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강남좌파들의 자식사랑

최형욱 디지털미디어부장

사적으론 개인적 욕망 추구하며

공적 영역서만 진보 외치면 위선

'내로남불'에 자기반성 사라지면

文정부 성공에도 장애물 될 것

특파원 칼럼용 사진-최형욱 뉴욕특파원




소시민 부모의 입장에서만 보면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만큼 정나미 떨어지는 해외 지도자도 드물다.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언행일치의 모범이라는 점은 존경할 만하다. 유복한 가정 출신인데도 평생 자동차는 가져본 적이 없고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담배와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취미라는 것이 고작 텃밭에서 만든 과일로 잼 만들기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영국령 북아일랜드 문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등에 대해 강한 반제국주의 목소리를 내왔다. 캐비어 좌파, 리무진 좌파, 살롱 좌파, 샴페인 사회주의자 등의 비아냥을 듣고 있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공감 못 할 구석도 있다. 바로 자식 교육 문제다. 그는 세 아들을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내려는 둘째 부인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이혼했다. 본인이야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부상했지만 양질의 교육 기회를 박탈당할 뻔한 자식들은 뭔 죄인가. 첫째 부인이 병원에서 애를 낳을 때도 해당 병원 노조를 상대로 강연이나 하고 있었다니 이혼당해도 싸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위선자라는 욕을 얻어먹을망정 다른 정치인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공교육 살리기’를 내걸고 당선됐지만 정작 자신의 두 딸은 명문 사립학교에 보냈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1993년 취임하자마자 외동딸을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전학시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장쩌민·자오쯔양·리커창 등의 중국 지도자들도 자손들을 그토록 질시하는 미국에 유학시켰다. 시진핑은 중국 국가주석에 오르자마자 하버드대에 유학하고 있던 외동딸 시밍쩌를 급히 귀국시키기도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현 정부의 고위직이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자녀를 자립형사립고나 외국어고, 강남8학군 학교에 보낸 것도 부모 입장에서 이해가 간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생겨났겠는가.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백대로 자녀에게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싶은 것은 대다수 부모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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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권력과 지적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평등과 분배에 관심이 많은 이른바 ‘강남좌파’들의 성향을 이중적이라고 비아냥거릴 필요도 없다고 본다. 부자나 권력자가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타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부럽기도 하다. 또 “좌파라고 이슬만 먹고 살라는 얘기냐”는 항변처럼 모든 정치인에게 코빈 같은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지나칠 때다. 개인이라면 좋은 말만 하면서도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사적 영역에서는 탐욕스럽게 살면서 공적 영역에서만 진보를 떠들면 위선자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더구나 자신은 지키지도 못할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만 강요하는 행위는 코미디에 가깝다.

정작 자신들이 애용한 자사고나 외고를 고사시킨다거나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서 다주택자들에게 집 팔라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다. 방향은 올바를지 모르지만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냉소를 부추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도 장애물이다. 과거 참여정부 때 영화계의 격렬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움직임을 한방에 잠재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위 현장에 나온 스타들의 외제차와 명품이었다. ‘속과 겉’이 다른 모습을 본 국민들은 영화계의 집단이기주의쯤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더 암울한 것은 현 정부 내에서 최소한의 자기 성찰마저 사라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논문 표절,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격세 증여를 통한 편법 상속 등 장관 후보자들의 여러 적폐 행위에 대한 청와대의 변명은 ‘법적으로 문제없다’ ‘너희는 흠이 없느냐’는 식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최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을 일으킨 인사들은 상당수가 학계나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 나름대로 공동체의 선을 추구했지만 살다 보니 세속에 물들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진보적 가치를 개인적 출세의 도구로 활용했을까. 결코 비꼬는 것이 아니다.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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