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최저임금 10% 오르면 일자리 16만개 감소…'소득주도성장' 역행

최저임금 1만원의 역설

소득증대→소비증가→투자확대

선순환으로 경제 살린다지만

급격한 인상땐 기업 채용 줄여

'속도조절' 안하면 성장 방해할것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인 소득주도 성장은 ‘가처분 소득 증대→소비 증가→생산·투자 확대’의 경로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론이다. 핵심은 소비다. 각종 정책으로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줘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이론의 성장 경로 고리가 끊기고 경제도 안 살아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1만원 만들기를 고수하는 이유도 소비에 있다. 당장 기업 부담이 커지더라도 근로자 임금이 늘면 소비가 커질 것이고 그러면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도 좋아지지 않겠냐는 논리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 결과는 정부 기대와 정반대였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이 소비를 활성화시키기는커녕 위축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가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이 오는 2020년까지 1만원이 되면 민간 소비 증가율은 내년 0.2%포인트, 2019년 0.55%포인트, 2020년 0.92%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산은 물가, 노동, 수출입 등 무역거래, 재정지출, 총수요, 금융 등의 변수를 거시경제재정모형에 대입해 분석한 것이다. 소비 증가율이 최대 0.92%포인트 감소한다는 계산은 최저임금으로 구직급여·육아휴직급여 등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것까지 감안한 계산이다. 재정지출 효과가 없다면 소비 증가율 감소는 2020년 기준 1.0%포인트까지 늘어난다.

이로 인한 실제 소비액 감소는 3년간 17조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 1년차인 내년에는 2,000억원이 줄지만 2년차 4조8,000억원, 3년차에는 12조8,000억원까지 감소 폭이 커진다. 예산정책처의 분석대로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꾼이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권일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임금 인상 폭이 작을 때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감내할 수 있지만 인상 폭이 너무 크면 한편으로는 상품·서비스 가격을 올려 물가가 상승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용을 줄이게 된다”며 “이런 대응은 모두 소비를 위축시키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즉 최저임금 증가 폭이 작았다면 긍정적 효과만 나타나겠지만 증가 폭이 너무 큰 바람에 물가 상승, 고용 감소 등 부정적 효과가 커서 소비도 위축될 것이라는 얘기다.


고용 축소 부작용은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은 점원 없이 운영하는 ‘무인 편의점’을 선보이고 있으며 PC방·음식점 등에 무인 자동화 설비 도입도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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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고용 확대 등에도 부정적이다. 예산정책처는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취업자 수는 내년에는 변동이 없으나 2019년 0.01%포인트, 2020년 0.03%포인트 준다.

최저임금이 16.4% 오르면 27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여성·고령층 등 일자리 소외계층의 고용 감소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3일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주최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핵심 이슈, 어떻게 풀 것인가’ 추계 토론회에서 “2006~2014년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데이터로 추정한 결과 최저임금이 10% 인상되면 주당 44시간 기준 일자리가 1.4%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주당 44시간 이상 임금 근로자가 1,182만명(지난 9월 기준)임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 16만여개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부작용에 대비해 최저임금 재정지원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2조9,7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5년간 평균 인상률 7.4%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대상은 30인 미만 영세업체다. 하지만 이 대책은 시행 이전부터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간의 임금을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역시 “최저임금 재정 지원은 한시적인 대책”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 기업은 다시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에 노출되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정책인 셈이다. 더구나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업체뿐 아니라 중소·중견·대기업도 영향을 받는데 이들은 지원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적정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의원은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고집하다가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가 무너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는 한편 일본과 미국·영국 등 선진국처럼 지역별·산업별 경제력 격차를 최저임금에 반영하는 ‘차등적 최저임금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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