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변 여주대교 앞 영월공원에서 건너다 보면 마암(馬岩) 앞 녹지에는 ‘검은 궤’가 놓여 있다. 잘 닦은 돌과 같이 반짝이는 검은 유리 외피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남한강 물결, 여주의 하늘을 고스란히 반사된다. 풍경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이 묵묵한 검은 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끌리듯 발길을 향하게 한다. 이 곳이 여주시의 역사박물관의 신관 여마관이다.
여주는 과거 황려현(黃驪縣)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황마(누런 말)와 여마(검은 말)가 등장하는 여주의 고전에서 유래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남한강 물살이 바위에 부딪혀 솟아오른 모습이 누런 말, 검은 말과 닮았다 하여 이를 황마와 여마라 불렀고, 그 바위를 마암이라 불렀다. 검은 말이라 여강(驪江)이라고도 불리는 남한강과 마암은 여주의 역사와 정체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설계자가 주목한 것은 이 정체성이다. 여주박물관이 여주의 역사를 담는 곳인 만큼, 디자인은 여주의 역사 스토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관의 주된 색으로 검은색을 택했다. 여마를 상징하기 위해서다. 형태는 외부에서 보기에 창이나 기둥 없는 하나의 묵직하고 커다란 돌덩어리와 기하학적인 단순함을 취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건물의 표정은 지루하지 않다. 건물 전체를 마감한 검은 유리에는 쉼 없이 변하는 여주의 하늘과 남한강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남서쪽 모서리의 잘려나간 삼각면은 여주의 근원인 남한강 상류를 비추어 드러낸다. 설계자인 이성관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대표는 “박물관 건축이 또 하나의 빌딩이 아닌, 하나의 추상화된 조형물이 되기를 원했다”며 “외관 설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녹지 안에 건물이 아닌 검은 오브제처럼 디자인한 데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이 대표는 “검은 상자 속으로 들어가 역사를 탐험하러 간다는 여주 박물관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끌리듯 검은 상자 속으로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곳은 쉼터 역할을 하는 카페다. 전시관 출입구가 먼저인 일반적인 박물관 내부와는 다르다. 그 카페 옆 시원하게 마련된 수공간인 반사풀(pool)은 박물관 건축의 시각적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반사풀에서 일상을 지우고, 시선을 그 너머로 옮기면 남한강이 보인다. 본격적인 전시관은 2층에 배치돼 있다. 카페를 들리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왔다가 전시도 자연스럽게 보고 갈 수 있게끔 하겠다는 의도다.
수공간에 접한 카페의 상부는 9m 깊이의 캔틸레버로 들려있어 연속적인 남한강과 여주시내의 막힘없는 전경이 들어온다. 길게 뻗은 천장면과 하늘이 반사된 수면 사이로 보이는 극적인 경치는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 여주의 존재와 역사를 되새기며 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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