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기고]포스트모던 이코노미 시대의 성공 키워드 ‘로컬’

정성휘 ㈜홍두당 대표



중세가 ‘항해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여행의 시대’다. 지난해 2,400만명을 돌파한 한국인 해외여행객 수가 올해는 가뿐하게 2,6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는 특히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행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긴다.

여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미각의 기억은 여행의 추억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여행의 동인이 ‘관광’에서 ‘미식’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미식여행·미식순례라는 말까지 생겼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항상 음식 콘텐츠가 넘쳐난다. 우리에게 음식이 없다면 그래도 과연 SNS가 이처럼 성행할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질 좋은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제 기능적인 필요만을 따져 구매하는 상품은 없다. 배부르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든지 맛있어서 먹는 음식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SNS 시대의 소비자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음식을 원한다. 하지만 아무리 SNS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삼시 세끼 모든 음식의 사진을 찍어 올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먹는 많고 많은 음식에서 SNS로 공유되는 것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음식은 이제 문화 콘텐츠다. 사람들이 SNS에서 즐겨 공유하고 공감하는 콘텐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내러티브 임팩트와 비주얼 임팩트다. 독특한 이야기와 시각적 매력을 가진 대상에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여행객을 겨냥해 개발한 ‘지역 음식’이야말로 SNS와 여행의 시대에 최적화된 가장 트렌디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은 비복제성과 비대체성·영역배태성·장소정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장소자산(place assets)이기 때문이다. 지역 자체가 내러티브 임팩트를 갖춘 ‘이야기의 보고’이자 비주얼 임팩트를 지닌 ‘볼거리’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역 음식은 어떤 음식보다 문화 콘텐츠로의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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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음식이라고 해 꼭 전통 토속음식일 필요는 없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먹거리를 기획해 지역의 이야기를 입히면 된다. 일본은 다양한 종류의 지역특산품이 잘 발달한 나라다. 전국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선물용 먹거리 상품도 꼭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 여행을 가면 꼭 사오는 도쿄 바나나빵, 나가사키 카스텔라, 후쿠오카 병아리빵 등이 대표적인데 모두 토속음식과는 무관한 먹거리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천안 호두과자, 경주 황남빵, 충주 사과빵, 제주 귤하르방빵 등 지역 특산 먹거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 먹거리 콘텐츠가 SNS에서 적극적으로 공유·확산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러티브 임팩트와 비주얼 임팩트가 ‘2%’ 부족한 탓이다.

미국 대학에서 외식 산업을 전공하면서 우리나라의 외식 산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처럼 성공적인 지역 특산 먹거리 브랜드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고향 대구로 왔다. 먹거리는 옛날식 단팥빵으로 정했다. 일제강점기부터 대구는 제과제빵의 도시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대구시에서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대구 원도심 지역 일대를 근대골목이라는 이름의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상호를 대구근대골목단팥빵으로 정하고 지난 2015년 봄 근대골목길 초입에 가게를 열었다. 2년 반이 지난 현재 직영점만 16개인데 그중 13개는 현대·신세계·롯데 등 국내 3대 백화점 입점 매장이다. 대구의 지역 스토리를 브랜드에 녹여낸 것이 성공 기반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내년 3만달러 문턱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여행과 음식에 대한 사회적 기대수요 또한 높아질 것이다. 독자적인 매력을 가진 지역과 그 장소자산을 활용한 지역 음식을 다양하게 발굴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솔루션이라고 믿는다. 포스트모던 이코노미 시대의 성공 키워드는 로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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