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성장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해 한국은행은 “최근의 견실한 성장세가 이어지면 물가상승률도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의 물가상승률 정체는 그동안 한은이 금리 인상 시점을 고민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앞으로 물가 오름세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이날 전망으로 최근 한은이 시장에 보내온 ‘금리 인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메시지에도 힘이 더 실리게 됐다.
한은은 9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향후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유휴생산능력이 해소될 경우 물가 오름세를 제약했던 경기적 요인은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전 세계적으로 경기 회복세가 확대되고 있는데도 근원인플레이션율(에너지·식료품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오르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한은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도 오르므로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것이 중앙은행들의 법칙이었는데 이것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경제 성장세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확대됐지만 근원인플레이션율은 1%대 중반에서 정체돼 있다. 한은은 올해 대부분의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의 주요 배경으로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성장과 물가 간 관계가 약화한 데 대해 “노동시장의 구조변화 국내외 경쟁심화, 인플레이션기대 약화 등의 구조적 요인과 함께 유휴생산능력 상존에 따른 성장의 물가에 대한 영향력 축소 등 경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면서 “구조적인 요인들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겠지만, 경기적 요인은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특히 유휴생산능력의 축소 가능성에 주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따라 커졌던 유휴생산능력이 현재 물가 오름세를 제약하고 있지만, 경제성장세가 더 확대되면 유휴생산능력도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그 근거로 그동안 마이너스였던 우리 경제의 GDP갭률(잠재생산능력과 실제 국내총생산의 차이)이 올해 하반기 크게 축소되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플러스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통상 GDP갭률이 마이너스면 경제 내 유휴생산능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 성장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4~7분기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한은은 현재의 물가상승률 정체는 2015~2016년의 성장세 둔화에 따른 것으로 보고 내년부터는 근원물가상승률이 목표(2%) 수준인 1.9%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한은이 물가 오름세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내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한은은 이날 향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에 대해“국내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고 물가도 목표 수준의 오름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동안 저성장·저물가에 대응하여 확대해 온 통화정책 완화의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여건이 점차 조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