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21% 오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닛케이지수는 33%, 독일 닥스는 28%, 한국 코스피도 27% 올랐다. 그 어떤 변화도 트럼프로는 설명할 수 없다.” (미국 경제매체 CNBC)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을 맞아 뉴욕증시의 상승 랠리가 이어지면서 월가에서는 ‘트럼프 효과’가 화두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증시 호황이 거듭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중에도 자신의 대선 승리 후 주요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자화자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투자 전문가들은 물론 기업 수장들까지 나서서 ‘트럼프 효과’는 없다고 부인하며 증시 호황의 원인은 따로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미국의 3대 주가지수는 뉴욕증시에서 모두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날 대비 0.03% 상승한 2만3,563.36에, S&P500지수는 같은 기간 0.14% 오른 2,594.38에 거래를 마쳤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 역시 전날보다 0.32% 오른 6,789.12에 마감했다.
이날 지수 상승은 애플이 4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미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9,000억달러(1,004조원)를 돌파한 영향이 컸다. 지난 5월 시총 8,000억달러를 돌파한 지 5개월 만에 새 역사를 쓴 애플 효과가 이날 증시 상승을 견인한 것이다. 애플의 3·4분기 매출(526억달러)이 월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등 탄탄한 실적 향상을 과시한데다 신제품 출시 기대감이 맞물려 주가를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세제 개편과 ‘러시아 커넥션’ 수사로 씨름하는 와중에도 주요 증시가 연일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은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닌 기술주 강세와 세계 경제 호황 덕분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올 들어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영문 앞글자를 딴 용어)’으로 불리는 5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탄탄한 실적으로 미 증시를 주도해왔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MSCI이머징지수는 달러 기준으로 34% 올라 16%에 그친 S&P500을 뛰어넘고 있다”며 “이는 MSCI이머징지수의 29%를 차지하는 기술주들이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의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연초 후 100%의 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데다 ‘FAANG’으로 대표되는 기술주들이 뉴욕증시 상승세를 이끄는 등 각국 증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 편에 섰던 재계도 이 같은 분석을 거들고 나섰다. 8월 트럼프 대통령 자문단에서 탈퇴한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주 강세가 정부 혹은 정치 덕분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보다도 제품·성장·혁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애플발(發) 뉴욕증시 호황에 9일 일본의 닛케이225지수는 이날 장중 25년10개월 만에 처음으로 2만3,000선을 돌파했다. 이후 닛케이지수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이익 실현을 위한 매도세가 오후에 몰려 소폭 하락 마감했지만 엔화가치 하락이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기술주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로봇 생산업체 화낙은 장중 2.1% 올라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기술주인 도쿄일렉트론도 오전 3% 넘게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