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군인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0월까지라는 구체적인 타임테이블도 명시했다. 매년 1조원, 누적으로는 수십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군인연금에 정부가 드디어 메스를 댔다는 데 대해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수십만명의 연급 수급자 등이 반발하자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아무 협의 없이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반발했고 기재부는 다음날 “추진하지 않겠다”고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정권이 바뀌고 과거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면서 출범한 현 정부지만 군인연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군인연금법상 5년에 한 번씩 재정추계를 업데이트하게 돼 있는데 2015년에 단행됐고 이를 앞당겨서 조만간 추진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특별히 없다”며 “군인연금제도를 손볼 계획도 없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군인연금에 들어가는 혈세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 지난 6년간 들어간 나랏돈만 8조9,852억원에 달한다. 제도 수술이 없으면 오는 2045년에는 2조원을 훌쩍 넘어 연간 2조7,861억원이 투입된다.
이를 두고 정부가 인기 있는 정책에 몰두하고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는 ‘쓴 약’은 삼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분 3조원 국고 보전, 아동수당,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노동시간 단축 등은 모두 국민소득을 늘리고 삶의 질을 높일 때가 됐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나랏돈을 직접 쥐여주며 인기를 끌어올리는 방안이다. 경제 체질개선에 필요한 정책이지만 ‘표’에는 도움이 안 되는 군인연금·사학연금 개혁, 노동 유연성 강화 등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지 정책이 늘어나며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내년 7~8월께 장기 재정전망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군인연금의 재정전망 등이 소폭 언급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시점이 문제다. 내년 7~8월은 지방선거가 끝난 후로 현재 논란이 되는 정책이 정확하게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으려면 그 이전에 내놓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연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세제분석관은 “군인은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고 항상 목숨을 담보로 일해야 해 공무원연금보다 국고지원금이 더 많을 수 있고 외국에서도 군인연금에 국고지원을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재정 건전성, 공무원연금과의 형평성, 군인연금 혜택의 구조 개선 등을 위해 군인연금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