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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②] ‘채비’ 고두심 “‘국민 엄마’ 수식어, ‘꼼짝 마’ 하는 것 같아”

“‘국민 엄마’는 너무 과분해요. 사실 어깨가 무거워요. ‘국민’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꼼짝 마’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의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래요.”

배우 고두심에게 ‘국민 엄마’가 과분한 수식어는 아니다. 이미 숱한 작품에서 이 시대 엄마의 마음을 대변해왔다. 그럼에도 “어깨가 무겁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서 오히려 짙은 엄마의 내음이 풍겨왔다. 연기 인생 45년 동안 많은 자식을 키워낸 고두심은 영화 ‘채비’(감독 조영준)를 통해 유독 가슴 아픈 자식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심정을 절절히 그려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채비’ 주역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채비’는 30년 내공의 프로 사고뭉치 아들 인규(김성균)를 24시간 케어하는 프로 잔소리꾼 엄마 애순(고두심)이 이별의 순간을 앞두고 홀로 남을 아들을 위해 특별한 체크 리스트를 채워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 영화다.

배우 고두심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배우 고두심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극 중 애순, 인규와 마찬가지로 이날 고두심과 김성균도 나란히 앉아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모자 케미’가 느껴졌다. 앞서 셀 수 없는 아들, 딸을 제 손으로 키우고 떠나보낸 고두심이지만 이번 김성균과의 연기는 또 달랐다. 극 중 인규가 7살 정신연령을 지닌 지적장애인인 만큼 연기에 더 신경을 쓴 것은 당연지사.

“깊숙한 내면을 보여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무거운 연기를 했다. 우는 장면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냉정하면서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얼굴은 민낯이다 싶을 정도로 잡티도 여의치 않고 완전히 나오게끔 (메이크업을) 했다. 지적장애인 아들을 가졌지만 나도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며 임했다.”

그랬다. 인규는 지적장애인이고 애순은 시한부였다. 몸이 건강할 때도 남들보다 더 많이 신경써야하는 자식인데 이제 본인의 몸이 아프니 표현해야 할 감정은 더욱 복합적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엄마 고두심은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내보였다. 역시 고두심이었다.


“이 영화는 그런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더욱 더 단단한 영화로 표현하려 했다. 나는 금방 갈 입장이다. 어설픈 아들을 세상에 두고 떠나는 그 입장은 실제로 본인이 아니라면 그만큼 절절하게 느낄 수 없다. 자꾸 형상을 그리면서 했던 작품이라 그런 엄마의 모습이 더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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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은 1972년 MBC 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어머니 연기를 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MBC ‘전원일기’를 통해 농촌의 맏며느리 상을 확립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엄마 역할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수 있던 것에는 그가 자라온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배우 고두심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배우 고두심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누구든지 자기 부모가 최고겠지만 저는 정말 우리 부모님을 사랑한다. 어머니는 어머니 다우셨고, 아버지는 아버지 다우셨다. 정말 좋은 부모님의 DNA를 닮고 싶었고 발뒤꿈치라도 따라간 삶을 산다면 성공한 삶인 거다. 자식에게도 좋은 부모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산다. 이런 것에 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고두심의 고향은 제주도다. 제주도에서 4대가 한 집에 살았다. ‘전원일기’ 속 풍경은 고두심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처녀 때부터 고모할머니라는 소리를 들은 고두심은 “누가 나를 향해 할머니라 해도 전혀 그런 게 없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품에 임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고두심에게 들어온 역할 중에는 꼬맹이 애기가 딸린 엄마 역이 많았다. 고두심에 따르면 “싱글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고. 어린 나이에 엄마 역을 시킨다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법도 한데, 고두심은 “얼굴이 엄마같이 생겼는지 시켜주지도 않더라. 목소리가 하이톤이 아니고 저음인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쿨’하게 설명했다.

인터뷰를 하는 고두심과 ‘채비’ 속 엄마를 연기하는 고두심의 태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꾸며내지도, 잘 보이려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느낀 바를 진솔하고 덤덤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고두심이 어떤 엄마를 연기하든 마치 오랫동안 봐온 것처럼 친근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국민 엄마’는 과분하다. 사실 어깨가 무겁다. 국민이라는 말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국민’을 붙이면서 ‘꼼짝 마’라고 하는 것 같다. 그만큼의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저에게는 과분하고 무겁기만 하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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