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김일주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이사





금요일 오후 우리 회사 영업사원들은 영상 통화로 본인의 퇴근을 일일이 확인시켜줘야 한다. 이때 특별한 사유 없이 영업 현장에 남아 있으면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잘 정착이 돼 이렇게까지 할 일이 없지만 일명 ‘힐링데이’ 실시 초기의 풍경이었다.

힐링데이는 일선 현장에서 매일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영업사원들을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 점심까지는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고 오후2시에는 퇴근하도록 한 제도다. 금요일 오후부터는 가족이나 지인·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싱글들은 자기계발에 힘쓰도록 만든 회사의 배려이다.


전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한국은 업소 비즈니스의 비중이 90%, 가정용 소비는 10%인 유일한 나라일 만큼 현장에서의 영업 전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힐링데이를 처음 도입할 당시 영업사원들은 우리 회사 홀로 금요일 오후 황금 같은 시간에 전쟁을 쉬겠다는 거냐고 반발 아닌 반발을 하기도 했다. 업계 일부에서는 우리 회사의 이런 결정을 두고 무모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 영업사원들을 반강제적으로 가족에게 돌려준 시간의 효과는 처음의 생각보다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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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4시간을 배려해줬는데 직원들이 돌려준 것은 40시간, 400시간 이상의 가치인 셈이다. 오랜 시간 경영자로 일하면서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우리를 일하게 만드는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른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힘은 가족에게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개인의 일(work)과 생활(life)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life Balanced·일과 생활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러나 무한 경쟁 시대에 개인의 입장에서 이를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영업 현장 일선에서 앞뒤 재지 않고 뛰던 지난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워라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만큼 가족의 희생이 컸다. 지금도 가슴 한편에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할 뿐이다.

월요일 아침 영업직원들의 표정이 전보다 훨씬 밝다. 사람이 일을 하면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그때 나를 잃지 않고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가족의 힘이라는 사실은 다시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우리 회사처럼 한 사람이 일인 다역을 하는 작은 조직일수록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아낌없이 지원하고 끊임없이 재충전해줘야 한다.

이제 개인의 삶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조직의 성과는 있을 수 없는 시대다. 언뜻 보기에 성과 위주의 경쟁과 워라밸은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로 여겨지지만 경쟁도 사람이 한다고 생각한다면 답은 바로 나온다. 경쟁우위를 지향하는 회사일수록 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근본을 연구하고 이를 지원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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