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사정 한파에...관료들 더 안 움직인다

과거정부 지시 따른 실무진에

책임 추궁 잇따르자 '자괴감'

정권 바뀔때마다 굴종하지만

"추종 못하겠다" 분위기 팽배



국정감사가 끝나자 여당은 73개 적폐 리스트를 만들었다. 해외원전 개발사업을 비롯해 다스의 히든챔피언 선정과정, 한일위안부협정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업무를 모조리 뒤지고 있다. 국세청의 옛 세무조사나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등도 사정권에 들었다. 이 때문에 “내가 한 일이 그렇게 나쁜 일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관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잇따른 사정 한파는 관료사회를 잔뜩 움츠려 들게 하고 있다. 댓글 수사 은폐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의 자살이나 인사청탁 문제로 구속된 산업통상자원부 서기관 사건은 이 같은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이유야 어떻든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방 관련 요직을 차지하면서 최고의 ‘장수’로 불렸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포승줄에 묶인 사진 한 장은 관료사회를 더 자극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3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3면

관련기사



이렇다 보니 고위직 자리를 제안받아도 거절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사립대 교수인 A씨는 최근 국내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고사했다. 금감원에 몰아치는 사정한파가 5년, 10년 뒤에는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게 관료사회의 분석이다. 장관 제의를 받은 B씨는 수락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거절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의 정부와 철학이 다른 새 정부에서 그가 과거에 해왔던 것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과장급을 중심으로 공직을 버리고 민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도 늘고 있다.

얼어붙은 관료사회는 곧 복지부동으로 나타났다.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일을 아예 벌이지 않는다. 해외자원 개발만 해도 실무진은 필요성을 느끼지만 사정 한파에 손조차 대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성과연봉제도 새 정부 들어 바로 폐기됐다.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요새 관료들을 만나보면 새로 온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굴종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추종하지는 않는다”며 “다음 정권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직전 정권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공무원들이) 불려 나간다”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충성을 하겠느냐”고 강조했다./세종=김영필·서민준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