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아라벨라가 중국에서 스타가 된 이유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치파오 차림에 중국 노래 불러

훈훈한 美·中 정상 만남 이끌어

美서 평가 엇갈리는 文대통령

'문화의 힘'으로 정국 풀어가야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중국 국빈방문 때 ‘깜짝 스타’가 등장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여섯 살짜리 외손녀 아라벨라 쿠슈너다. 분홍색 치파오 차림의 아라벨라가 한시와 중국 노래를 부르는 앙증맞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다소 경직된 자금성의 만찬장을 금세 훈훈하게 만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손녀는 미중을 잇는 작은 천사”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양대강국 정상의 엄중한 만남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가 그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어린 소녀가 보여준 것이다.

시 주석의 트럼프 대통령 영접은 융숭했다. 중국의 황궁인 자금성을 아예 통째로 내줬다. 만찬은 청나라 건륭제의 전용공간인 건복궁에 마련했고 황제들의 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으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냈다. 이 광경을 본 전 세계 언론들이 트럼프를 위한 ‘황제 의전’이라 호들갑을 떨었지만 여기에는 시 주석의 ‘문화적 복선’이 있었다. 우선 자신이 ‘황제’ 못지않은 1인 체제를 확고히 했음을 드러내놓고 과시한 것이요, 동시에 지금 중국은 과거 명청 시대처럼 전 세계를 호령할 준비가 됐음을 만천하에 알리려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한중일 순방의 첫 만남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였다. 그는 일본 특유의 접대문화 ‘오모테나시’로 손님을 극진히 모셨다. 그중에서도 접대 골프가 단연 압권이었다. 세계랭킹 4위의 일본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까지 동반한 라운딩에서 아베 총리는 직접 카트를 모는 저자세를 보였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허둥대다 벙커로 굴러떨어지는 해프닝까지 벌였을까. 아베 총리는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아베를 ‘충직한 부하(loyal sidekick)’라고 비꼬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세심함을 보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맞는 청와대에 한국화가 김보희의 ‘향하여’라는 그림을 외부에서 공수하고 오병욱의 ‘바다’, 김기창의 ‘청록산수’ 등을 곳곳에 배치한 것은 이채로웠다. 국빈 만찬상에 한우갈비구이와 송이돌솥밥 등 우리 고유의 음식을 내고 만찬 공연에서 국악인 유태평양이 한국과 미국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비나리’를 부른 것은 문화적 품격을 고려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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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제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미국산 무기 구입과 이방카 펀드 기부라는 선물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8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과 수십억달러의 미국 무기 구매 약속을 챙겼으며, 중국에서는 무려 280조원 규모의 경제 협력을 다짐받았다. 하지만 3국 순방 뒤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만약 트럼프가 미국을 국가주의·보호주의·일방주의·적대주의 방식으로 미국을 통솔한다면 중국의 방식이 이 시대 주류가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미중일 정상들은 이번에 각기 뚜렷한 색깔을 드러냈다. 트럼프의 ‘잇속 집착’, 시진핑의 ‘패권 추구’, 아베의 ‘충직한 부하’가 그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 유보적이다. ‘멋진 젠틀맨(a fine gentleman)’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찬사와 ‘못 믿을 친구(unreliable friend)’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폄훼가 엇갈린다.

북한의 핵 도발과 미중 패권 대결이 격해지는 한반도 안보지형에서 문재인 정부는 어디를 지향해야 할까.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그 답을 말해준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 hnsj@sedaily.com

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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