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아세안 정상회의 승자는?] 경협 다진 시진핑, 통상만 외친 트럼프에 판정승

트럼프, 무역선물 보따리 챙겼지만

남중국해 주도권 확보는 실패

印·태평양 전략도 주목 못 받아

EAS성명에 '北 비핵화'는 포함

일대일로로 인프라 물밑지원

시진핑, 영유권 분쟁 잠재워



1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폐막과 함께 마무리된 ‘아시아 외교전쟁’이 결국 중국 측의 승리로 마무리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집권 1년차를 결산할 이번 아시아 첫 순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결 유연해진 자세로 각국 정상들과 만나는 등 아시아 껴안기’에 나섰지만 주요2개국(G2) 간 패권 경쟁을 강화하며 흔들리는 1강 입지만 확인시켰다는 지적이다. 반면 중국은 아세안과의 남중국해 분쟁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미국의 입김을 봉쇄하는 등 달라진 입지를 톡톡히 과시했다는 평가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의제는 북핵과 남중국해, 무역 불공정 해소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중일 등을 중심으로 무역 선물 보따리를 얻어내는 데 그쳤을 뿐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는 별다른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의장성명에 ‘북한 비핵화’가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EAS 의장성명에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하는 내용이 실린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공조를 모색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는 성과를 낸 셈이다.

하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는 중국 측의 압승이라 할 만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베트남 정상회의 당시 “남중국해 분쟁 해결의 중재역할을 하겠다”며 동남아에서의 입지 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핵심 당사자인 필리핀과 베트남 모두 당사국끼리의 평화해결에 무게를 두면서 리커창 총리와 아세안 10개국 간 ‘아세안+1’ 회담에서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협상을 개시하는 선으로 봉합됐다.


더구나 전날 알려진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 초안에는 ‘상호 신뢰 강화와 중요성 재확인’ ‘중국과 아세안의 협력관계 개선에 유의’ 등 ‘당사국 간 합의’를 주장했던 중국 측의 입장이 대거 반영됐다. 중국은 역내 분쟁이 커지는 것을 막고 미국의 입김을 차단한 데 이어 지역 내 숙원인 남중국해 분쟁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히는 효과까지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행의 자유’ 작전 등으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경계해온 미국의 남중국해 내 입지는 그만큼 약화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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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더불어 주창했던 인도·태평양 전략도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이는 인도를 편입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의 근간으로 미국이 일본·호주·인도 등과 함께 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실무회담까지 진행했지만 각국의 견해 차이로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하는 아세안 각국이 중국 쪽으로 기운 것은 미국과 중국의 다른 접근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내에서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고전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한중일은 물론 아세안 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무역적자 시정을 요구하며 경제적 성과를 얻어내는 데 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순방은) 엄청나게 성공적이었다”며 “미국은 호혜적이고 공정한 무역을 원한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해 통상압박에 중점을 뒀음을 시사했다.

반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중국은 ‘일대일로’ 등으로 오랫동안 해당 국가의 인프라 물밑 지원에 나서며 경제적 우호 기반을 다졌다. 교역 비중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아세안 각국은 영해 문제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국가의 잇따른 변심에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리처드 자바드 헤이다리안 필리핀 드라살대 정치학과 교수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대해 “미국의 슈퍼파워가 자살하는 방법”이라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와 무역적자 해소 요구가 그동안 미국 정부에서 추진해온 ‘아시아 회귀’ 전략을 흔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빠진 아시아’가 중국 주도로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실제 이번 회의 전후로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이례적 부활에 성공한 반면 중국이 공들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연내 타결이 무산됐다. 인도 등과 일본·호주의 온도차가 극심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외신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화교 중심의 동남아에서 성과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양한 견해가 대립하는 아시아에서 ‘미국 1강’ 체제하에서나 가능했던 한목소리가 도출되는 것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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