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JSA 귀순] "차마 아이들을 보낼 수 없어 내가 갔다"

■북한군 병사 귀순 사건 비하인드 스토리

일촉즉발 상황서 대대장의 휴먼 스토리 & 리더십

JSA 대대장 ‘일촉즉발 상황서 전투준비’

적 중화기 30m 앞에서 포복으로 신병 확보

한판 붙을 뻔 했다...북한군 증원병력 달려와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이국종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수술결과 및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하려다 총격을 받고 쓰러진 북한 병사를 16분이 지나서야 발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나갔다.


서울경제신문이 ‘팩트 체크’를 통해 ‘우리 군 JSA 경비대대가 북한의 총격에도 대응하지 않는 무능한 군대가 아니라 슬기롭고 용감하게 대처했다’고 보도한 직후 ‘16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의문을 풀 수 있는 제보가 연이어 들어왔다. 중복확인을 거쳐 당시 상황을 재연해본다.

오후3시15분께 총탄 발사음이 들리자마자 JSA 한국군 경비대대장 권영환 중령(육사 54기)은 전방의 적황부터 살폈다. 권 중령은 순간 ‘전쟁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군 증원병력 00명이 몰려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초소의 북한군 병력과 합치면 적군의 수가 아군보다 많아지는 상황. 권 중령은 무장부터 시켰다. 평소 무장인 권총 대신 K-2소총과 방탄복·방탄헬멧을 갖추고 병력을 길목에 배치하는 한편 대대 병력의 증원을 명령했다.


전투준비와 배치가 끝난 후 권 중령은 감시 장비를 다시 돌렸다. 이때서야 북한군 병사가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낙엽을 모아둔 곳에 쓰러져 외부 식별이 쉽지 않은 상태였으나 감시 장비가 찾아냈다. 권 중령은 즉각 부사관 중에서 행동이 민첩한 중사 2명을 대동, 낮은 포폭으로 북한군 병사에게 접근해 구조해냈다. 북한군의 최초 발포와 전투준비를 거쳐 구조까지 걸린 시간이 바로 16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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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이 지난 14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귀순 상황 현안 보고 내용을 살피고 있다./연합뉴스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이 지난 14일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 귀순 상황 현안 보고 내용을 살피고 있다./연합뉴스


‘왜 부하들을 보내지 않았느냐’는 의문은 군 장성도 마찬가지. 권 중령에게 고위 장성들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3주 전에도 판문점을 방문했다는 한 장성의 전언에 따르면 쓰러진 귀순병사와 북한군 초소의 거리는 불과 수십m. 권총 사격으로도 맞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북한군 초소에는 소총뿐 아니라 중화기까지 배치돼 있었다. 북한군이 발포한다면 그야말로 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권 중령은 장군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차마 아이들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권 중령은 자신의 무용담이 알려지는 데 부담을 느끼며 한사코 마다했지만 여러 관계자를 통해 전해진 부하들을 죽일 수 없다며 자신이 나선 권 중령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화재가 되고 있다. 권 중령은 대대원 모두를 무사하게 지켜냈다는 점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남다른 자부심도 얻었다. 이등병까지 전 장병이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고 전투준비에 나섰다는 점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반면 북한군은 우왕좌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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