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우등생의 '벤처·창업' 투자 기피 원인

정삼영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금융대학원장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 가운데 ‘뜨거운 난로 효과(the hot stove effect)’ 이론이 있다. 난로 위 주전자나 냄비에 무심코 손을 댔다가 ‘앗. 뜨거워’라고 느끼게 되는 경험이 앞으로의 의사결정 성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똑같은 위험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우등생들은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비해 더 위험을 기피하는 성향을 띠게 된다.


이 이론을 통해 보면 왜 우리 대기업이 벤처·창업기업에 과감한 투자를 기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우등생 그룹’이다. 대체로 기업별로 국내외에서 한두 차례의 투자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물론 인수합병(M&A) 등의 투자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대기업이 초기 투자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벤처 투자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해봤는데 잘 안돼서 여러 임원이 문책당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위험도가 높은 도전성 투자 제안은 아예 검토조차 못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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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기업은 어떻게 높은 위험감수 성향과 도전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기업인 딥마인드에 1억달러를 과감히 투자한 구글이 오히려 일반 사례다. 그들도 똑같이 ‘뜨거운 난로 효과’ 경험을 했지만 실패에도 계속해서 위험 학습의 경험을 늘려가며 노하우를 쌓고 그 위에서 자신의 위험감수(risk taking) 성향을 높여 나갔다. 반면에 우리 기업은 한두 번의 실패 경험 이후에 ‘위험한’ 학습경험을 아예 멈춰버렸다. 즉 ‘앗. 뜨거워’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기업은 위험한 경험을 학습하면서 자신의 위험감수 성향이나 도전정신을 키워 나간다. 이때 위험 경험과 위험감수 성향 간 관계는 이론에서 ‘U’자 모양을 보인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에는 위험 경험이 도전정신을 위축시키지만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위험감수 성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은 급속한 기술융합 시대에 필요한 도전정신을 제고하기 위해 실패의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며 위험 경험을 계속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다양한 꿈을 지닌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문화로 바꿔나가는 일이다. 애플·구글·테슬라 등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변화시키는 과학이나 기술은 왜 유럽이나 일본·중국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제일 많이 나올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아마도 전 국민의 다양성·다변성을 수용하고 인정해주고 나아가 북돋아 주는 그 나라의 문화와 교육시스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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